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하여 / 로마서 15장 1 - 6절

로마서 15장 1 - 6절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14장에서 형제가 서로 부딪치지 말고 거칠 것이 없도록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특히 로마 교회에서는 먹을 것이 문제가 되어 서로 비판하고 갈등이 생길 일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어느 것이든 먹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음식 먹는 일에 자유롭지 않은 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약한 자들은 믿음이 강한 자들이 마음대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로마 교회에서 화평의 일과 서로의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안에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갈등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믿음이 강한 자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추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갈등 상황을 지적하면서 그 갈등의 실마리가 믿음이 강한 자에게 있다고 밝힙니다. 여기서 믿음이 강한 자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사역과 공로를 강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함을 누리며 구약에서 금한 식재료들을 거리낌 없이 먹고 또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또한 거리낌 없이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만 존재하시므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찌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정결한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이 자유를 누릴 동안에 믿음이 약한 자들은 믿음이 강한 자들의 행동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시험에 들게 하였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을 믿었지만 여전히 구약 율법을 의식하며 먹을 것과 절기를 지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믿음이 강한 자들이 누리는 자유를 이해하기 보다는 두려워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지 않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누리는 자유와 기쁨이 믿음이 약한 자에게 시험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바쳐 이루신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덕을 세우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의 약점을 돌보기 위하여 주어진 자유를 제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스스로를 제한하시고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을 들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으라


바울은 누구보다 강하신 예수님의 예를 들면서 믿음이 강한 자들을 위해 권면하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비방 당할 분이 아니셨습니다. 죄 없이 태어나신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가 받으신 비방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권능과 힘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향하는 비방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르는 나사렛 예수라는 명칭은 비방에 가까운 멸칭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그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별 볼일 없는 시골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왕의 자손이며 존귀한 자여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해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시고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직접 기록한 복음서의 기록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처럼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만 그 자유를 결국 이루어 주신 예수님처럼 자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참고 참으심으로 영광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이루신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위로와 영광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한걸음 한걸음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뛰어넘어 예수님과 같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죄악으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고 존귀하신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각을 품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며, 소망하게 되는 중요한 일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하게 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서로 같은 생각과 뜻을 품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자나 믿음이 약한 자나 동일한 뜻을 품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비방이나 의심은 없어지고 동일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있는 갈등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만큼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존귀하고 거룩하신 예수님과 같은 생각과 뜻을 우리 서로 함께 품게 될 때,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비천하고 부패한 우리의 심정이 아니라 거룩하고 정결하며 고결하여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가진 생각과 뜻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취할 영광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갈등의 끝


지금까지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 사이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제시한 해법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해법은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하여 자신이 누리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 모습에 대해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향해 꺾여 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함에 빠지는 처지에 놓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생각과 뜻을 품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나 혼자에게만 그치는 은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은혜입니다. 그 아름다운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길 소망하면서 오늘 하루를 복되게 살아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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