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0-18절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야곱의 우물과 예수님의 샘물
수가 성 여인과 예수님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을 알아채시고 지혜롭게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이동하셨습니다. 아직은 영광을 얻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표적들을 이루기 위해 힘써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이동하신 것이 이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꼭 만나셨고 그를 통하여 한 표적을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우물과 예수님
본문 속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앉으신 야곱의 우물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이야기 속에서 야곱은 대부분 하란에서 생활했지만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 부터는 세겜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세겜에 살던 사람들에게 세겜 땅을 사고 그 곳에 장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일부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서 부푼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땅이었습니다. 야곱은 우물을 파고 가축을 기르고 집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 우물가에 예수님께서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득한 자기 자손들을 꿈꾸며 세겜에 터잡고 살았던 야곱의 꿈과는 다르게 이제 그곳은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길가는 유대인 나그네가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는 것도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 되어버린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고 여인은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예수님을 의아하게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의아한 반응에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답게 대구법을 활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물과 물 좀 달라 하는 이라는 두 표현은 각기 다른 표현이지만 가리키는 곳은 한 곳입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가 싶지만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을 말씀을 바로 알아듣고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 거리를 여행하는 행색으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만한 그릇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여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우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진지한 고민과 지식을 갖춘 사람처럼 보입니다. 여자는 자신이 물을 길으러 온 우물이 야곱이 판 우물인 것을 알았고 사마리아인도 유대인도 야곱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역사도 알았습니다.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던 상식과 그 상식으로도 풀리지 않았던 질문들을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야곱과 예수님
여자는 자기가 물을 길러 온 우물이 단순한 우물이 아니라 야곱이 판 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옛날 야곱이 세겜에 지내면서 자기 가족들과 또 짐승들을 먹이기 위해 팠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강조되지는 않지만, 야곱의 아버지 이삭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고서는 우물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판 우물은 단순히 야곱의 생존을 위한 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이루는 복의 증거이며, 이 복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며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도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내리는 특별한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 야곱에게 내린 특별한 복 앞에서 한 사람이 그 우물보다 자신이 더 위대한 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여자는 당연히 그가 야곱보다 더 대단한 사람 혹은 야곱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보다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는 예수님께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은 야곱과 예수님을 비교하지만 사실은 야곱에게 우물이라는 복을 주신 하나님보다 위대한 존재이냐 하는 물음이 숨어있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우물의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며,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야곱에게 우물을 주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한 여자에게 생명수를 주신 예수님이라는 이야기로 바꿔가기 시작하십니다.
사실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진작에 이루어졌습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 왕을 거치며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시내에서 유브라데 강까지 주시리라 하신 땅에 가득하며 번성하며 평안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제 이루어질 약속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평안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이 일이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에 이르렀습니다.
수가 성의 여인은 항상 목말라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바로 예수님께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 길으러 오는 수고를 피하기 위하여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요구는 진지했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연약함과 부정함,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괴로움과 결핍과 연약함을 한 번에 꿰뚫어 보셨습니다.
남편을 데려오라
예수님은 대뜸 여자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여자가 겪고 있는 고통과 결핍과 연약함을 잘 설명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중동에서 여러 명의 남편을 거쳐간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도 모세 오경에 기록된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음행 외에는 이혼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음행한 자는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이 내려졌기 때문에 남편을 다섯이나 맞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을 다섯 명이나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남편들과 사별이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룻기의 이야기처럼 여인은 어느 한 집안에 시집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갖지 못한 채 남편이 먼저 죽게 되었고 기업 무를 자가 나서서 그 여인을 책임졌을 것입니다. 룻은 행복하게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와 기업을 무를 자식을 낳고 평안히 살았지만 여자의 이야기는 룻의 행복한 결말과는 달랐습니다. 여자에게는 이런 일이 다섯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슬하에는 자식도 없고 그 여인을 책임지고자 했던 기업 무를 자들은 다섯 명이나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류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인식되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여자에게 숨겨진 슬픔의 크기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나 격려도 자신을 향한 조롱과 비웃음으로 비꼬아 들을 만큼 비뚤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고 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사정을 모두 알아주셨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제는 공연히 외치는 좋은 말씀이 아니라 나에게로 다가오는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에게 그러고도 나에게
지금까지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인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시고 그 여자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자기 삶을 채워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여인의 고통과 결핍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옛날 야곱처럼 우물만 파놓고 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갈급한 자 앞에서 나오셔서 함께 하시고 대화하시며 부족함을 채워주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도덕적 개념, 윤리적 규칙, 자연의 법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말씀이시며, 우리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시는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한 말씀인 것 같더라도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 가운데 영원히 샘솟아 나는 풍족하고 풍성한 말씀입니다. 수가 성 여인에게는 생수와 같은 말씀으로 오셨듯이 우리에게도 또다른 형태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말씀하시며 우리를 채우시려고 하시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 누리는 은혜를 누리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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