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나는 왜 설교자가 되려고 하는가?

 나에게 설교자라는 말은 무겁고 신중하고 진리만을 전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설교자의 고충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설교자는 성경 한 줄 만 읽어도 당연히 30분 이상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설교자라는 분류에는 전도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나를 가르쳤던 전도사님들은 (이미 목사님이 되셨겠지만) 정말 대단하셨다. 성경 한 절에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들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이 나의 생활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설교 속에는 내가 살아가야할 방향과 내가 믿어야할 대상이 있었고 내가 소망해야할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설교자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설교자가 아니더라도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수 있게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경의 깊은 뜻과 풍성한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고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살아가도록 채찍질 해주는 그 자체로 살아있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나는 설교자로 살아가길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길 원했다.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면서 설교가 성경의 내용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좋은 설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받아드리거나 어떠한 기준과 한계 없이 해석하고 그것을 설교한다면 그 설교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 아니라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성경 구절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들으면서 알게된 사실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 동안에는 설교자의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성경 말씀을 가르친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끌어들어와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교자의 전달력이 중요하지만 그 전달력을 이용하여 어떤 것을 전달할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빼어난 전달력은 성경을 잘 모르는 성도님들에게 맹목적인 신앙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아찔한 생각하게 되었다. 성도님들은 강단에 선 설교자의 말을 자신의 삶의 자세를 바꿀 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주일 예배의 설교가 좋으면 월요일 새벽기도 출석 수가 바뀌는 것이 보였다. 설교자의 설교가 성도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설교자가 전하는 내용이 성도님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설교는 설교자의 전달력에서 듣는 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안 되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의지하여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면 그 사람의 말이 어눌하다든지 더듬는다든지 하더라도 그 말씀이 청자들에게 심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게 당신은 글 쓰는 것은 잘하지만 말하는 것은 어눌하다고 지적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설교는 복음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복음이 없는 설교는 설교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이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고, 서로에게 봉사하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하고, 성경 말씀을 읽게 하고, 찬양하게 한다. 복음이 포함되지 않은 설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그저 표면적인 변화,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불필요한 지식만 늘어날 뿐이다. 복음만이 설교의 내용이 되어야 하고 복음만이 우리가 선포할 내용이다.

 신학교에 들어와 목회자 후보생으로 전도사 사역을 감당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 설교를 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같이 새벽 기도회, 수요 기도회, 철야 기도회, 주일 오전, 오후 그외의 성경공부 시간까지 가르치시는 목사님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이번 한 주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데 목사님들은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실까? 하는 경이로운 마음과 함께 존경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제까지 말한 내용의 반이라도 지켜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목회자 후보생 그리고 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받는 시간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며 성도님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천국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설교자가 되기 위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소중히 하면서 내게 주신 연단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신 것처럼 설교라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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