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본을 찾아낸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찾아낸다는 기쁨이 가장 클 것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더 하나님의 생각을 더욱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적 입장을 취하던지 본문을 찾아내는 즉, 본문비평은 누구나 받아드리고 서로 공유하는 객관적이고 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 “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무비판적인 자세를 반성하고 사본학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봄으로 우리가 신약 본문에 대해서 무슨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글이다.
중세 말기 종교개혁의 서막이 열리려는 즈음에 16세기에 에라스무스는 최초로 헬라어 신약 성경을 편집하여 출간 했다. 이것을 TR (공인본문) 이라고 하였다. 이 성경은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과 영국의 성공회가 영국왕의 명을 받아 번역한 흠정역 등 종교개혁의 결과물로 각 나라가 자기 나라말의 성경을 번역할 때 원본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그러나 모든 것을 의심하는 계몽주의가 유럽의 사상적 주류가 되고, TR 역시도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을 살았던 존 밀이라는 사람은 TR과 다른 상이 독본을 수집하였으며, 이것에 충격을 받은 벵겔은 평생 사본학을 공부하며 사본 연구의 주요 원리 몇 가지를 만들게 된다. 그것을 요약하면, 첫째, 본문의 옳고 그름은 사본의 숫자가 아니라 사본의 비중으로 따져야 한다. 둘째, 필사자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라는 규칙이다. 이 규칙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후에 여러 가지 고대 사본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뱅겔의 규칙은 발견된 고대 사본 (대표적으로 시내산 사본)과 전해 내려온 사본들 (대표적으로 비잔틴 사본) 사이에서 발견된 고대 사본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것의 결과물은 바로 웨스트코트-홀트 판 신약성경이었고 그 뒤를 이어 네슬레-알란트가 편집한 신약성경이 예전의 TR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웨스트코트-홀트는 왜 발견된 사본들인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전해 내려온 사본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을까? 그들은 먼저 전해 내려온 대부분의 사본은 전수되는 과정에서 어떤 편집자들에 의해서 편집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고대 시대에 필사된 채 발견되어 전수되는 과정이 없으므로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가설에 근거한 판단은 그 가설을 증명해 내어야만 설득력을 가지지만 그들은 별다른 증명이나 검증 절차 없이 1,800년 동안 내려온 사본들의 가치를 폄하하였다. 그리고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내적 증거’를 통해 더욱 본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내적 증거라는 말은 뜻이 잘 통하지 않고 엉성한 본문이 원본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판단 또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며, 필사자가 잘못 필사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는 기준이다. 결국 내적 증거라는 말은 학자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다는 말과 비슷한 말인 것이다.
웨스트코트-홀트가 가설에 근거하여 주관적인 판단으로 본문 비평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소수 학자들과 목사들은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첫째로 흠정역 옹호 운동이다. TR을 변역한 흠정역을 사용하자는 운동인데, 다소 감정이 앞서서 지나친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예로 우리나라의 ‘말씀보존학회’는 흠정역제일주의, 흠정역절대주의에 빠져 있다. 둘째로, 학적 노력인데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검증하려는 노력이나 웨스트코트-홀트가 무시한 대다수 본문과 최근 발견된 소문자 사본들을 편집한 새로운 신약성경을 출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치열한 싸움이 벌여지는 사본학 분야이지만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본 상의 차이는 의미상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신약 성경을 정립하실 때에도 거의 모든 교회가 비슷한 성경을 사용하게 하셨고, 신약 성경이 전수되는 과정에서도 거의 의미상 변화가 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신실하게 보존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받은 그 말씀대로 변화 없이, 왜곡 없이 살아내면 되는 문제이다. 물론 사본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논쟁들을 지켜보며 학자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을 내세울 때에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배우고 더 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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