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7일 수요일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시고 (스바냐 1장 7절-9절)




스바냐 1장 7절-9절

7절 :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8절 :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9절 :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제목 :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시고 


  저번 시간에는 땅 위의 모든 것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선포되는 모습을 공부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하나님의 뜻은 다음 세 가지 였다. 첫째, 땅 위의 모든 것에 선포된 재앙은 유다와 예루살렘 때문에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목표로 삼으신 자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주민들이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은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로 우상 숭배 문제가 심각했다. 우상숭배가 얼마나 보편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수준에 이르렀다.

둘째,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방 민족과 같이 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하여 손을 뻗으셨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시고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손을 뻗는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이방 민족에게 행해지던 재앙을 선포하는 동작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을 종으로 삼았던 애굽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께 무관심한 자, 무신론자들이 있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자들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도 있었다. 아무도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을 거라는 깊은 절망에 같혀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손짓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번 시간에는 희생의 날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공부할 것이다. 구조를 이야기할 때도 다루었지만, 희생은 스바냐서에 있어서 가장 중심되는 주제이다. 희생 없이는 정결을 얻지 못하고 정결함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면 회복은 없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그 자체로 희생 제사이며, 희생 제사를 통과하지 않고는 정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희생 제사는 무엇으로 치뤄지고 누구를 위하여 치뤄지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말씀을 살피면서 알아보자.

첫재, 희생 제사의 제물은 유다와 예루살렘이다.
2절부터 6절까지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 위의 모든 것들을 향한 재앙과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재앙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7절부터는 선지자 스바냐의 선포가 이어진다.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서 해석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재앙이 바로 희생 제사라고 말씀한다.

희생제사는 언약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을 때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서 드리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매번 언약 백성들이 범죄할 때 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할 때마다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여 그들이 받아야할 죄의 결과를 제물이 대신 받도록 하였다.

희생제사를 위해서는 제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제물이 바쳐진 후에는 제사에 참여한 자들과 함께 먹는 축제가 준비되어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이 희생제사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축제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 자신이 제물이기 때문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희생제사의 제물이다.

그러면 7절에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희생제사에 청한 자들은 누구일까? 누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희생제사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까? 사실 스바냐 선지자는 그것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바는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였다는 것이다. 구별이라는 말의 의미는 희생 제사가 당장이라도 치뤄져도 괜찮을 정도로 희생제사에 청함 받은 자들이 정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사를 당장이라도 치루실 준비를 마치셨다는 의미이다. 희생제사는 함께 먹는 축제를 포함한다. 하지만 축제가 치뤄지기 위해서는 제사가 먼저 드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희생물에게는 제사는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향해 내리신다.

둘째, 희생 제사는 재앙이다.
4-6절에서는 신앙의 문제로 재앙 받을 자들에 대해 말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재앙 받을 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의 근본에는 이방 신을 더 의지하는 마음, 자신을 더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 아닌 이웃 나라의 왕을 섬기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고관들과 왕족들은 이방 나라의 옷을 입었다. 그들은 앗수르 제국의 옷을 입고 그들의 문화에 따라 살았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거대한 제국을 더욱 의지하였다. 제국이 입는 옷을 입고 제국이 행하는 미신적인 행동을 행했다. 어떤 부류들은 율법에 전혀 규정하지 않은 규칙들을 지켰다. 문지방을 넘어다는 것이 바로 그 규칙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문지방에 신들의 영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방 신들과 이방의 습관을 따르는 자들은 포악과 거짓으로 자기 주인의 집을 채우게 된다. 이런 모습은 노아 홍수 때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 노아 홍수의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포악함이었다. 창세기 6장 11-13절 말씀이다.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윳 있는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짧은 말씀 속에 인간의 포악함에 대해 3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홍수 심판이 있었으나, 인간은 자신의 부패함을 이기지 못하고 포악함으로 자기 보다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재물과 소유를 빼앗아 자기 주인의 집을 채운다. 하나님 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한 자신을 위해 채운다.

포악을 저지르는 자들의 하나님은 자신이고 그 자신을 위해 자기 주인의 집을 채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사랑의 법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만큼 이웃을 섬겨야 한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기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해야 했다. 신명기 15장은 가난한 형제와 종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온다. 특히 4-5절은 가난한 형제와 종들을 그리고 14장 말미에 언급되는 레위인들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잘 섬길 때에 받는 복에 대해서 설명한다. 4-5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주변에 가난한 자가 없고 다른 나라에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고 다른 나라를 통치할찌라도 통치당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웃을 사랑하여 복을 받으라는 말씀을 주셨지만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방 신과 이방의 문화를 따라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다. 자기의 주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는 4~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발하신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오늘 본문의 포악과 거짓으로 자기 주인의 집을 채우는 자들과 똑같이 취급하신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포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자들에게 재앙을 선포하신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선포하시는 이 재앙의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다.

셋째, 희생 제사는 여호와의 날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날은 구약 성경에서 마지막 때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날은 아모스와 호세아에 잘 나타나는데 여호와께서 모든 역사를 끝내시고 그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실 날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파루시아, 예수님의 재림, 최후심판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날에 희생제사가 치뤄지며 모든 인류 특히,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제물이 될 것이다.

희생제사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언약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여 죄를 지었을 때, 그 언약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행해진다. 이 제사는 매번 이루어지며 매번 드려야 한다. 인간은 매번 더러워지며 매번 죄를 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희생제사는 인간 제사장에 의해서 드려지는 제사와는 다르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드리는 제사이기도 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제사는 그 제물의 규모에 있어서 인간 제사장이 준비하는 제사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제물은 땅 위에 모든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인간이다. 인간의 죄는 자신들 전부를 바칠 뿐만 아니라 땅 위의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도 함께 바쳐져야 할 정도로 도저히 정결해지지 못할 정도로 더러워 졌다.

이 정결해지지 못하는 죄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해결하셨다. 단번의 희생제사로 해결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희생이 단 번의 제사로 온 인류를 정결하게 하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셨다. 온 인류가 받아도 부족한 재앙, 형벌을 예수님께서 몽땅 끌어 안아주셨다. 여호와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우리는 최후 심판 때에 우리에게 전가된 의로움을 확정 받을 것이다. 확인 받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와 영원을 누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희생제사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제물로 한 제사이며, 재앙이다. 그러나 땅 위에 모든 것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거두시지 않으셨다. 희생제사의 제물로 분명 함께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통해 희생제사를 대신 치루셨다. 그리고 진짜 여호와의 날에는 희생제사 후에 벌어질 함께 먹는 축제만 남았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희생제사를 준비하셨다는 사실에 두려워할 뿐 아니라 그 제사가 이미 치뤄졌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한다. 스바냐 선지자가 기쁨의 노래를 외치듯 말이다.

스바냐 3장 14~15절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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