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8일 월요일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펴리라! (스바냐 1장 4절-6절)

스바냐 1장 4절-6절

4절 :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절 :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절 :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제목 :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펴리라!


 지난 시간에는 스바냐 1장 2-3절 부분을 배웠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선포하셨다. 보시기에 좋으셨더라고 말씀하셨던 세상을 왜 진멸하려고 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살펴보았다.

첫째, 하나님께서 내리실 재앙은 노아의 홍수 심판을 연상시킨다. 노아 홍수 직전에 죄악으로 가득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독백을 하시는데, 멸절시키시겠다는 피조물의 순서가 창세기의 순서와 오늘 본문의 순서가 유사하다. 이 순서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창조의 순서의 역순이다. 이것은 창조 세계를 아무 것도 없었던 과거로 돌려 버리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낸다.

둘째, 역창조는 십계명 2 계명과 연결된다.하나님께서는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비록 순서는 다르지만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물 속에 있는 것 스바냐 본문에서 말하는 사람과 짐승,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를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피조물의 형상인 우상들과 이방 신들로 가득하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적힌 율법은 없어져 찾는 사람도 없었다.

셋째, 역창조에 대한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심판 받는 4가지 피조물 중에 사람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릴 재앙의 가장 주된 표적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온 세상의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그 피조물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기는 커녕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과 같이 섬겼다. 그 모습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을 선포하신다.

이번 시간에 배울 스바냐 말씀은 좀 더 지난 시간 배웠던 범위보다는 좁고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재앙을 예언한다. 땅 위에 모든 것을 멸절하겠다는 재앙과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릴 재앙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바냐가 그저 유다 사람이기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말씀을 기록하였을까? 아니면 진정 하나님의 뜻이 이 가운데 있을까? 함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땅 위의 모든 것에 선포된 재앙은 유다와 예루살렘 때문에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스바냐 1장 2-3절에서 우리는 우상숭배하는 자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모든 것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배웠다. 그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목표로 삼으신 자들은 오늘 읽었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주민들이다. 3절에서 악한 자들, 거치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오늘 읽은 본문에 드러난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은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로 우상 숭배 문제가 심각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성전에 이방 신들과 온갖 우상들이 서있었고 집집마다 자기 집에서 이방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일월성신이 대표적인 예인데, 집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지붕에 제단을 차려놓고 일월성신에 대한 제사나 의식을 치루었다. 지붕은 상당히 개방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이다. 사무엘과 사울이 첫 만남을 가졌던 곳도 지붕이었다. 다윗도 자기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아버지의 처들을 취할 때에 지붕에서 그 일을 저질렀다. 성경 속에서 지붕에서 무엇인가 한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행위를 드러낸다는 뜻이고 이 행위가 부끄럽지 않다는 의미이다. 지붕에서 일월성신을 섬기는 행위가 얼마나 보편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현이다.

사실 해와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피조물이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지키기 위해 가나안 남부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해와 달을 향하여 명령하였다. 그 명령에 따라 해와 달은 그 자리에 멈추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멈추어 주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해와 달에게 명령했다는 사실은 해와 달이 결코 인간 위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 인간 보다 못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되 다른 신과 함께 섬겼다. 여기 등장하는 말감에 대해서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모압 사람들의 신인 몰렉일 수도 있고 암몬 사람들의 신인 밀곰일 수도 있다. 문자적 의미로 그들의 왕이라는 의미라서 인간 왕을 신처럼 모시는 자들 예를 들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이나 바벨론 왕을 신처럼 모시는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경배하던 간에 하나님과 함께 섬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호와께 맹세하면서도 말감에게도 맹세한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한갖 조각상, 혹은 인간 왕처럼 섬긴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의미는 다른 어떤 신도 아닌 자신을 섬긴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과 다른 이방 신들 중에 자기에게 도움을 줄만 한 신에게 기도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기능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을 받기 위하여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게 보이는 것을 드리는 것, 하나님을 제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면 조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며 도구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독립적인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스스로 역사하신다. 우리의 기도나 요구는 그의 역사를 일으켜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계획 속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요구를 용납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유대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 받은 일, 가나안 땅에서 이방 민족들의 침략과 위협 속에서도 평안히 살아온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했어야 했다. 은혜가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방 신들을 여호와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그들의 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이고 그들에게 임한 재앙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재앙을 선포하셨고, 그 원인이 되는 자들을 멸절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재앙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재앙이 아니다. 대부분 구약성경에서 재앙의 예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히 여기심을 강조하며 돌아오면 그 재앙을 없이하고 다시 회복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다와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방 민족과 같이 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시고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재앙의 피해는 모든 가축이 죽었고(출 9:6) 땅에 푸른 것이 남지 않았으며(출 10:15),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 모든 처음 난 것들이 죽고 말았다(출 12:29). 그야 말로 애굽 땅 위의 모든 것이 멸절되었다. 열 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려지기 전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애굽에게 손을 뻗어 재앙을 선포하였다. 손을 뻗는다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이방 민족에게 행해지던 재앙을 선포하는 동작이다.

4절 첫 부분에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펴신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와께서 손을 펴셨음으로 그들은 이제 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적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이다. 그들에게 어떤 자비도 없다. 애굽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모든 가축도, 모든 푸른 것도, 장자도 남지 않도록 모조리 멸절시키실 것이다. 그들의 죄악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손을 펴셨다는 사실은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을 종으로 삼았던 애굽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 이방 민족, 이방의 도시가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처지이며, 그들의 죄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특이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자들, 유다와 예루살렘에 처지에 이미 무관심해 버린 자들이다.

셋째,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께 무관심한 자, 무신론자들이 있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자들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완전히 등을 돌려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처지,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던 간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드러낸다. 그들에게 선지자의 외침은 무용지물이다.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한 불 심판과 전쟁은 설명할 수 없는 대자연의 현상이거나 약소국 유다의 필연적인 실책이다.

그들은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손에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히스기야 왕 때에 그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므낫세 왕 시절에는 앗수르 왕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역대하 33장 11절). 더 이상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바람 앞에 등불, 이미 꺼졌어야 하는 등불이었다. 이스라엘을 영원히 지키시겠다던, 다윗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은 이미 전설 속에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의 현실 속에서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것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방신들은 우리를 대적하는 이방인들을 도와줄 뿐이고, 여호와 하나님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믿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놓지 않으셨다. 므낫세 왕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스스로 겸비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다(대하33:15-16). 그의 아들 아몬 왕 시절에도 그가 스스로 겸비하지 않고 더욱 범죄하므로 신복이 반역하여 요시야를 왕으로 세우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대하 33:21-25).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자기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라고 요구하신다. 이 언약은 결혼 언약과 같아서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부탁, 자신을 바라봐 달라는 부탁과 같다. 결코 무리한 부탁이 아니며,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부탁이 아니다. 각자 역할에 맞는 일을 해달라는 말이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아내됨을 잊어버린채 아무도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을 거라는 깊은 절망에 같혀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손짓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죄악은 땅 위의 모든 것을 절멸시킬 재앙으로 되돌아 왔다. 이 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방인으로 취급하였다. 옛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함을 보여주신 애굽 사람들과 같이 취급하셨다. 재앙은 멈출 수 없다.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준비하셨던 10가지 재앙 모두를 애굽에 쏟으셨던 여호와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결코 재앙을 받는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멈추지 않으실 것이다. 핑계하지 못하도록,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들을 징계하시고 징벌하시고 멸절시키실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 내 삶의 한 치도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곳이 없다.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 온 세상을 멸절시키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내 모든 상황 가운데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 여호와를 찾으며 구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모양과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바냐가 노래하는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즐거이 부르시는 분이시다.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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