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장 1절~3절
1절 :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2절 :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절 :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먹는 것 = 사는 것
요즘 사람들은 먹을 것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TV나 유튜브만 보아도 맛집 탐방이니 유명한 음식 먹방이니 하면서 먹을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이 보고 즐깁니다. 먹방과 더불어서 쿡방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그것을 또 어떻게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한 팁들을 나누고 이야기 하는 것이 굉장히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먹는 일은 우리 일생에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먹는 즐거움이라도 없으면 이 힘든 세상에 어떤 위로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만연하게 깔려있는 듯 합니다. 좋은 옷이나 좋은 차, 집은 가지지 못할 지라도 좋은 음식이나, 정말 맛좋고 질 좋은 음식을 먹자는 마음이 강한 것 같습니다.맛있고 질 좋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최근의 유행과는 별개로 먹는 일은 사는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최소한의 영양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병이 생기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영양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식사와는 별개로 영양제를 먹기도 합니다. 하루 세 끼 식사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양제를 먹는다고 해서 식사를 줄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식사를 통해서 얻는 열량,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먹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습니다. 먹는 것에서부터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은 우리 몸을 이루고 구성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구성됩니다.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영양분들이 우리 몸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 먹게 되면 몸이 커지고 뚱뚱해지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적게 먹게 되면 몸이 작아져 마르게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 각 조직의 세포들은 각각의 수명이 있고 그 수명이 다하면 새로운 세포로 대체됩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은 것으로 몸이 만들어지니 건강이 좋아지고 나쁜 음식을 먹으면 나쁜 것으로 몸이 만들어지니 건강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아무 음식이라도 먹어도 되지만 몸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은 데로 삽니다. 먹는 데서 에너지를 얻어서 그 힘만큼 살 수 있습니다. 먹은 것으로 우리 몸을 구성하며 살아갑니다. 음식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먹이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십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동산에서 나는 나무의 실과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셔서 땅의 아름다운 소출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좋은 것들을 거부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먹을 것을 선택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었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가 아니라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받친 제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받친 제물을 먹길 좋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를 지키기 보다는 이방 나라의 절기를 지키며 이방의 음식을 먹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보다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거부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말씀으로 좋은 것을 먹이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시는 먹을 거리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전할 선지자 에스겔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두 가지 행동을 명령하셨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입니다. 다른 음식이 아닌 두루마리,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거부하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말씀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을 것을 주실 때에 말씀으로 그들에게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도록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실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약속하셨고 그것을 내려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의 말씀으로 절기를 정하시고 그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을 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정결법으로 정결하고 부정한 음식들을 구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기르고 재배할 수 있는 것들을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좋은 음식은 모두 말씀으로 규정되고 허락되고 명령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선지자인 에스겔에게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였습니다.두루마리를 먹으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거부하는 죄 많은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명령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좋은 것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적인 책이나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한 일은 성경에 총 세 번 등장합니다. 오늘 읽었던 에스겔 선지자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레미야 15장 16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10장 9절에서 두루마리를 먹어버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던 두 선지자와 한 사도는 각자의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핍박과 불순종의 시대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의 좋은 것으로 채우고 살고자 하는 시대 가운데에서 살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는 말씀을 전하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핍박 받을 것이 뻔하고 믿는 자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불순종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대목에서 이런 명령이 등장합니다.선지자 에스겔의 상황
에스겔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 요한 사도가 받은 명령이 비슷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겔서 말씀에 집중해서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이 말씀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선지자의 처지가 우리의 처지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던 곳은 포로로 잡혀온 바벨론의 그발 강가였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유력한 자들을 잡아와서 교육시키고 바벨론 제국의 일꾼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잡혀온 포로 중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 같이 높은 지위에 오른 자들도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잡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나라의 가치관을 심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기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의 등불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다윗 왕가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것은 기도 밖에 없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식으로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이방의 땅 바벨론에서 기도한들 하나님께 닿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했던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떠나왔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도 아니 계시고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에스겔 선지자의 입장은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대제사장 사독 가문의 사람으로 30세가 되면 성전에서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5살 되던 해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분명 대제사장 사독 가문의 아들로 마땅히 누리고 감당해야 할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5년 동안 허무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30세가 되던 해에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발 강가에서, 바벨론 제국에 충성하는 일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희망도 없고, 하나님을 섬길 만한 직분을 행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한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찾아와 주셔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고 선지자로 세워주셨으며,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여 주셨습니다.
두루마리의 내용 :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먹으라고 명령하신 두루마리는 2장 10절에서 그 내용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에스겔 선지자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영화를 보거나 다큐멘터리, 박물관에서 두루마리로 된 고문서들을 한 번씩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고문서들을 보면 한 면에만 글을 적어 놓지 양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양면으로 빼곡히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단단히 진노하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가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라 명령하셨습니다.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한 말씀을 받아 먹은 에스겔의 반응은 특이합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반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몹시 화가 나고 진노하셔서 하신 말씀이 두루마리 가운데 기록되어 있을 터인데, 그것이 달다고 말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두루마리 양면에 빼곡히 기록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자기 입에 달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달콤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19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좁은 의미로 보았을 때에 율법을 뜻하는 데,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자신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 충동대로 백성을 심판하거나 복을 주거나 하지 않으시겠다는 신실하신 약속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담겨진 결정체 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먹었던 심판이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담겨있는 심판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자기에게로 돌아오도록 심판하시는 것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에스겔이 먹은 두루마리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가득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달콤한 약속이기 때문에 달기가 꿀과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결정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에스겔이 그 말씀을 그 상황에서 받아 먹는다는 일은 정말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온 상태였습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시드기야 왕이 있었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성전과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예레미야라는 걸출한 선지자도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에게 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 가운데 선포되면 되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으면 해결되는 문제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일을 감당하면 되는 듯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발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 포로들 가운데 에스겔을 불러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앞뒤 양면 빼곡히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당시 유다 왕국은 애굽과 두로 등과 손을 잡고 바벨론의 속국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포로가 된 패배감 속에 살고 있다가 예루살렘의 반역 소식을 듣고 약간의 희망을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시며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두루마리를 먹어 그 두루마리에 빼곡히 적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에스겔 속에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씀으로 에스겔 자신을 가득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기대와 소망과는 전혀 관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고 그 말씀으로 자신을 채웠습니다.가서 말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두루마리를 먹으라 명령하신 이후에 바로 이어서 두 번째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신 두 번째 명령은 가서 말하라 입니다.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를 먹이시며 두루마리에 적힌 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에까지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벨론에 잡혀 왔던 포로들에게는 확실히 전해졌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가 직접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방 땅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자기가 먹었던 그 말씀들을 쏟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먹었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에스겔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특이한 환상이 가득하고 독특한 상징적인 행동들이 가득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 말도 안되는 행동들에 순종하며 그 기행들을 다 해내어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들을 다 전했습니다. 에스겔은 자기가 먹은 말씀대로 자기 몸이 구성되도록 하였고 그 구성된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을 가서 전하라는 의미는 이런 의미입니다.
벙어리가 된 에스겔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우리 몸에 받아들인다는 것 입니다. 먹는 일은 에너지를 생성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먹은 것으로 우리 몸은 구성되고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의미도 마찬가지 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바벨론 포로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하셔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스겔 3장 26절~27절 말씀입니다.26절 :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27절 :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에스겔은 자기가 받아 먹은 말씀을 말로 꾸짖지 아니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시키신 그 행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몸소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토해내는 입력된 것만 기계적으로 내뱉는 스피커 같은 인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받고 선지자가 되어서 처음 겪었던 일은 벙어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행동을 통해서 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성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삼으라 말씀하시는 예수님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서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가서 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말과 가서 말하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벙어리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하신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은 우리가 21세기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올 개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학교에서 이루어집니다. 학교에서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웁니다. 학교에서만 그 일이 이루어지지 다른 일상 생활에서는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학교나 교육 당국이 정한 교과목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에게 선생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어떤 한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을 국어 영어 수학 등과 같은 과목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과목이 실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있지만 삶에 대한 태도나 자세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의 선생과 제자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과 열 두 제자의 생활을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과목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먹고 자고 쉬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함께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선생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행동들을 보고 따라했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따랐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읽고 있는 4권의 복음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열 두 제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께 배웠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상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기록하였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하기 위하여 복음서라는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마태복음 28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제자 삼으신 바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을 닮은 제자를 만들라 즉,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을 세우라는 뜻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일은 예수님 말하시고 행동하시고 사셨던 모든 모습을 닮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되는 일 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하시듯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일상 속에 녹아들어 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두루마리를 먹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을 선지자의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길 요구하셨던 것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구성하고 말하도록 하며 행동으로 나타내길 요구하십니다.
우리를 먹여주시는 하나님,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정보가 아닙니다. 규범도 아닙니다. 우리를 형성하는 영양소 입니다. 우리를 체질적으로 바꾸어 내는 우리의 먹을거리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먹을 때에 우리는 변화될 것 입니다. 변화되도록 사모하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에 변화되는 일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변화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오늘 읽어던 말씀 중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2절 :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먹으려고 입을 벌리자 두루마리를 에스겔 선지자에게 먹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변화되지 않을 것을 그리고 스스로 두루마리를 먹지 못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에스겔로 하여금 입을 벌리게 하셨고 그 벌린 입에 두루마리를 친히 먹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에게도 행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이미 주셨고 그 말씀을 믿도록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믿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이끄시는 데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성경으로 변화되는 최종 단계,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됩니다. 결국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무엇인가를 더 알기 위하여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다 더 나은 것, 지금보다 예수님과 더 가까운 존재가 되기 위하여 읽어야 합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규칙과 규정의 변화가 아니라 내 본성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 읽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더 알길 갈망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를 형성하고 변화시키길 원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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