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헌신 (빌립보서 2장 19절-30절 / 20.10.27)

빌립보서 2장 19절-30절

19절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절 :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절 :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절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절 :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절 :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절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절 :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로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절 :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절 :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절 :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절 :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제목 :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헌신


서론 : 모범이 되는 동역자들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함당한 삶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겸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함께 품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참된 겸손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가르치고 헌신한 내용 그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기쁨이 되고 또한 빌립보 교회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바울 뿐만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를 통해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에는 바울의 신실한 두 명의 동역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바울의 충실한 제자이자 아들이라고도 불린 디모데 입니다. 다른 한 명은 빌립보 교회를 섬기다가 바울을 돕기 위해 파송된 에바브로디도 입니다. 이 둘은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었으며 특히,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 둘을 소개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설명합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디모데의 연단 (19절-24절)


바울은 먼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소개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에 루스드라에서부터 함께한 제자 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외조모를 통해서 신앙으로 양육받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이후 줄곧 바울과 함께 하며 바울을 도와 전도를 계속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의심 없이 교회를 맡겼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교회를 돌보는 것과 같이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바울이 불가피하게 가지 못하는 교회에는 항상 디모데가 대신 가서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돌보도록 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 아들과 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회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교역자인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회에서 급히 파송되었다가 병 때문에 장시간 로마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서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에바브로디도의 공백을 채우길 원했습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때 부터 바울과 함께 다닌 터라 빌립보 교회의 사정도 바울 만큼 잘 알았고 바울과 뜻을 같이 하여 사정을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진실히 생각할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에 가서 빌립보 교회를 살피고 교회의 소식을 전해준다면 바울이 직접 빌립보 교회를 다녀온 것과 마찬가지일정도로 안심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 곁에는 빌립보로 보낼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디모데를 보낸 이유는 다른 이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자기 일을 구하기 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것에 열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항상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연단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연단이라고 하는 것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을 가열하여 그 속에서 불순물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연단을 거친 금속은 순수한 상태가 됩니다. 불순물이 있었던 자연 상태의 금이 순수한 정금이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불과 같은 시험을 잘 견뎌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부족함 없는 일꾼으로 섰습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바와 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동역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대할 때에 자식이 부모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과 같이 그리고 자기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일도 돌보는 것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었고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빌립보 교회에 가길 원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를 믿지 못해서, 디모데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울이 1장에서 먼저 간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헌신 (25절-28절)


바울은 디모데를 보낼 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도 함께 보낼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시대에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세워질 당시에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빌립보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돕기 위해 모았던 선물들과 재정을 맡길 만한 빌립보 교회의 충실한 일꾼이었고 바울을 찾아와서 바울의 감옥 생활을 도울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의 사역도 도왔던 동역자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을 돕는 빌립보 교회의 섬김을 기쁘게 받으셨고 그 기쁨을 사도 바울에게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편지를 통해 기뻐하라는 말을 전하여 빌립보 교회 또한 기뻐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된 에바브로디도였지만, 로마에 도착하고 얼마되지 않아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를 보내준 빌립보 교회를 사모하여서 그들이 걱정할까봐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숨겼습니다. 에바브로디도의 태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랑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겸손함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걱정하는 마음을 자기의 사정보다 낫게 여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걸린 병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정말로 죽을 지경에 이르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를 낫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에바브로디도 때문에 근심 위에 근심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회복하게 되어 근심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내었습니다. 보내었다는 말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서를 가지고 빌립보 교회에 왔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왔을 때에 바울 선생님을 돌보기 위해 파송한 사람이 왜 왔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아났고 그래서 빌립보 교회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편지를 통해 알고 그가 왜 돌아왔는지 납득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소중한 일꾼인 에바브로디도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보내어 빌립보 교회가 다시 기뻐하게 하고 자기 근심도 덜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들을 대해야 하는 자세 (29절-30절)


바울은 로마에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냈고 이어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낼 예정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보내는 자들을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겨주길 부탁합니다. 이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자들이기에 많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런 자들을 영접하며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길 힘써 달라는 바울의 부탁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죽을 병에 걸렸어도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가 보낸 재정과 선물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로마에서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그는 한 개인 바울을 돕고 바울을 위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한 일은 그리스도의 일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죽을 병에 걸려서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에바브로디도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그가 다시 살아나 빌립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에 당연히 살려주실 것을 믿고 목숨을 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복음은 목숨을 걸만한 가장 가치있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1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에바브로디도의 마음에도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일만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이 일은 바울을 섬기는 빌립보 교회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로마에 오지 못해 바울을 섬기지 못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힘이 지나도록 열심을 다하여 바울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돌보지 못했고 죽을 병을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을 병에 걸렸어도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계속해서 섬겼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감당했던 일들은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복음을 전하는 일과 관련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을 도와서 성경을 가르치고 편지를 대필하고 교인을 심방하며 사람을 불러오고, 바울의 뜻을 대신 전달하는 일 등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결론 : 부족함을 채우려 하노라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사람의 겸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을 먼저 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역자,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역자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미처 섬기지 못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특별히 헌신하여 부족함을 채우는 자들입니다. 우리 또한 그런 부르심 가운데 있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제국이라는 현실 가운데 부름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겪는 일상 가운데에서 우리의 교회가 일일히 참여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일상의 현장 가운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학교, 가정, 동아리, 알바 자리 등등 각자가 맡은 그리고 주어진 자리에서 교회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부름 받고 파송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달음질 하였던 그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보여준 헌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고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로마 시민으로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자기 일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도 감수하고 어쩌면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참된 기쁨이 가득한 삶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말만 들으면 어렵고 힘든 삶처럼 들리지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소원을 우리에게 품게 하시고 그의 기쁘신 뜻 가운데 행하게 하시므로 거뜬히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가득히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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