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장 1절 - 6절
1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절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닌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절 :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절 :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 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절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절 :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제목 : 불 같은 날
서론 :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말씀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말씀 다음이 바로 복음서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기 전에 주신 마지막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만큼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초림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실하시듯 백성들도 하나님께 진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는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분위기 주도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타락을 고발하고 그로인해 죄를 행하는 데 치우쳐진 백성들을 고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참된 예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가 성전 문을 닫아 이 부정하고 더러운 제사를 멈추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고 자신들이 이룬 것들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바를 낱낱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십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피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봅시다.
본론1 : 용광로 같은 날, 공의로운 해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지정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3장에서 두 번이나 언급된 내용입니다.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는 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길 자를 구분하실 날 입니다. 이 날은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여호와의 날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날이며 그 날에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고 악한 자는 벌하시고 의로운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그 날입니다. 여기서 악인들은 말라기 선지자가 계속 지적하고 고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자기 의가 하나님 앞에 인정 받기에 충분하다고 착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고 의인에게는 그 의에 합당한 것을 주실 것이고 악인에게는 그 악에 합당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그 날을 용광로 불 같은 날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용광로는 금속을 녹이는 화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광로에는 지푸라기를 태우지는 않습니다. 지푸라기로는 철을 녹이는 온도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용광로라 번역된 단어는 주로 빵울 굽는 화로를 뜻합니다. 진흙으로 항아리처럼 만들어서 윗부분은 좁고 아래 부분은 넓은 구멍을 가지고 있어고 아랫 부분 구멍에 불 피울 나무를 넣어서 열을 가하는 구조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내부에 붙여서 아랫 부분에 불을 피워 빵을 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지금은 대단해 보이는 자들이지만 빵을 구울 때 사용하는 지푸라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인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간단히 다룰 수 있는 화로 속의 불처럼 간단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고 소멸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화로에 불 같은 날이 될 것이지만 의인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날이 될 것입니다. 공의로운 해는 악인들이 태워질 화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태양과 화로의 불은 비교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온도차를 보이지만 화로의 불은 심판을 나타내고 태양은 치료하는 광선을 내뿜습니다. 의인과 악인이 그 날에 받을 것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화로에 지푸라기를 던지듯 넣을 것이지만 의인들에게는 태양처럼 떠올라서 치료하실 것입니다.
태양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석입니다. 태양의 뜨거움은 지푸라기 같은 악인들을 태워버리시지만 의인들은 태양빛에 의해 치료되며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만큼 기뻐합니다. 태양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그들에게 합당한 것을 내리시는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거나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기준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흔들리는 촛불에 의지해서 자신을 본다면 분명 자기 모습을 왜곡되게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빛을 의지하여 정확하게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하여야 살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롭고 공의로우심이 태양처럼 떠올라 악인들은 태워지고 의인들은 치료받고 송아지처럼 뛰놀 때,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악인들에게 밟힐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악인에 대한 의인의 승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이미 화로의 지푸라기처럼 불타 버렸기 때문입니다. 불타버리고 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의인이 악인을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이 여길 수 있는 이유는 공의로우고 정의로우신 재판관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하셨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오직 여호와께서 이루신 승리를 함께 누리며 즐거워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익하고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했던 그 물음도 어쩌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했던 맨 처음 질문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대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본론2 : 옛 언약과 갱신된 언약과 앞으로의 언약
말라기 선지자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고 기억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 입니다. 호렙 산은 시내 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매우 중요한 산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산이라고도 불리는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 직접 강림하셔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시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법을 모세를 통해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호렙산이라고도 불리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약속을 한 산입니다. 또 호렙산은 뒤에 나오는 엘리야와도 관련이 있는 산입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펼치고 난 뒤에도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의 완고함과 간악함에 못이겨 도망한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아람 왕이 될 하사엘과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예후와 엘리야를 이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호렙산은 이스라엘을 범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더라도 그들을 붙잡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호렙 산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을 지키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지키는 일은 어렵습니다. 지키지 못할 법이라고 생각해서 그 법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법을 기억하고 자신을 비춰보며 교정해 나가야 합니다. 법을 기억하는 일이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법을 주신 분과 법을 주신 이유와 법이 가진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과 은혜를 담아두셨습니다. 그것을 모른채 행하기만 한다면 사실은 그렇게 지킬 수도 없는 수준의 법이지만, 하나님께서 법을 주신 뜻에 맞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기 종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모든 상황과 배경들을 기억하고 법과 연결시키며 기억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자기 백성이 알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알길 원하셨습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말은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과 동일하며 요엘 선지자가 그 날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선지서를 기록한 처음 호세야, 아모스 선지자와 함께 활동했던 초기의 선지자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구약 선지자이면서, 선배 선지자가 사용한 표현을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선지서를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 중에 가장 유명한 선지자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알리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백성들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모세, 엘리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자녀들은 이스라엘의 현 세대나 이후 세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모세와 엘리야 때처럼 현 세대의 이스라엘과 이후의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지키길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마음을 그 자손들이 품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계속 전해지길 원하셨습니다. 자녀는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으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저주로 그 땅을 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두려워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저주로 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을 듣고 조상들의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결론 : 저주로 칠까 하노라
구약 성경의 마지막은 희망과 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한국어의 어순 때문에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는 말로 끝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헤렘이라는 한글 성경에 저주라고 번역된 단어로 끝납니다. 구약 성경 39권은 저주라는 단어로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모세와 엘리야 때처럼 옛적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사생애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보다 세례 요한의 외침을 먼저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탄생까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심은 저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이키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착각과 교만에 빠져 자기 의를 드러내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주신 법을 따르며 우리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시고 심지어 예수님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저주로 마친 구약 39권은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을 통해서 은혜로 바뀝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1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이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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