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5일 월요일

[경남마산지방 특강] 성경 속 고린도 교회 이야기 (겨울 중고생대회 / 21.01.19~21)



첫번째 교회 : 고린도 교회


고린도 교회는 당연하겠지만 고린도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 입니다. 고린도는 아가야 속주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속주라는 말은 미국에서 사용하는 주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도에 해당되는 행정구역을 말한답니다. 아가야 속주는  지금의 그리스가 있는 발칸 반도 끝자락을 가리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이어주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협이라는 말은 양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는 좁은 지형을 말합니다. 고린도는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둘러쌓인 항구 도시였습니다.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둘러쌓인 도시 고린도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세 군데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동쪽 해안 사로니코스 만의 겐그레아 항구, 서쪽 해안 고린도 만의 레기움 항구가 유명했습니다. 로마와 아시아를 오가는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입니다. 배를 통해서 한 쪽 항구에 내려서 디올코스라고 불리는 고린도를 가로지르는 포장도로를 통과하면 로마에서 아시아 쪽으로 바로 갈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를 통과하지 않을 경우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빙 돌아가야 하는 수고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로마와 아시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고린도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고린도는 로마 제국에게 점령 당하기 전에는 아카이아 동맹에 소속된 도시 국가였습니다. 기원전 146년 로마는 아카이아 동맹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 전쟁으로 인해 고린도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100년 동안 고린도는 폐허만 남아있었습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고린도가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항구도시가 될 것을 알아보고 고린도를 재건하였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해방민들,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민이 된 사람들을 재건된 고린도에 이주시켰습니다. 고린도는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길목 도시로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로마에 의해 파괴되기 전 고린도에는 그리스인밖에 살지 않았지만, 재건된 고린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와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각기 믿는 신이 달랐습니다. 고린도에는 수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아프로디데, 아폴론, 헤라, 데베테드, 코레, 아스클레피오스, 포세이돈 등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신들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황제가 지은 도시답게 황제 숭배를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특히, 포세이돈 신을 위한 이스트미아 체전을 열어서 지금의 올림픽과 같이 아가야 속주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도시에는 만 팔천 석 규모의 극장과 삼 천 석 규모의 콘서트홀, 도시 중심부에는 큰 시장이 위치해서 십 만명의 도시 주민과 더불어 고린도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우상이 가득한 고린도에는 도덕적 타락이 심했습니다. 특히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매우 타락하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아크로코린트라는 큰 산이 있었는데 그 산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위한 신전이 가장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고린도에 전하기 전에는 천 명의 남 사제와 여 사제가 아프로디테 신전을 섬기기 위해서 고용되어 있었습니다. 사제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을 위한 목적으로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몸을 내놓았습니다. 사제들 뿐만 아니라 많은 창기들이 고린도에 활동하였고 고린도를 방문하는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소녀 라는 말은 관용어로 창녀를 뜻하는 단어로 통용되었고 고린도인과 같이 하다 라는 말은 창녀와 함께 논다 라는 의미로 통했을 정도로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풍요로운 항구 도시, 해방된 사람들의 도시, 우상 숭배의 도시인 고린도에 세워졌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첫 시작은 사도 바울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에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쫓아낸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 입니다. 약 2만 5천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고린도로 추방되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난 뒤 추방 명령은 철회되었지만 그대로 고린도에 살는 유대인들이 있었고 유대인들은 안식일 마다 모일 회당도 고린도에 지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육 개월 동안 사역하다가 바울을 좋게 생각하지 않던 유대인들에 의해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없는 동안에는 이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복음을 듣고는 고린도 교회를 섬겼습니다.

아볼로 목사님은 고린도 교회를 말씀으로 잘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믿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볼로 목사님이 에베소로 다시 돌아가고 난 뒤 고린도 교회는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던 사도 바울에게 들려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처음 교회를 세운 바울 사도를 따르는 사람과 지금 목사님인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파당이 많이 나뉠 수 있던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한 교회당 건물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고린도에 흩어져 있는 소수의 상류층 신자 각각의 집에 50-60명 정도씩 모였기 때문입니다.  집주인과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각 모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따르는 사람들이 다를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파당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어느 유력한 파당의 신자는 아버지의 아내 즉, 계모를 범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 신자가 유력한 파당의 유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건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그 사람을 당장 교회로부터 나가게 할 것을 고린도 교회에 이야기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고린도 교회 전체가 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각 파당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상대 파당의 신자를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동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셨다는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한 자를 심판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간의 문제는 성도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세상 법정에서 형제, 자매를 고발하여 이기는 것보다 그들을 용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믿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으로 나뉜 것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논쟁이 되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에게 편지를 써서 질문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결혼과 성에 관련된 문제, 우상 제물에 관련된 문제, 공적 예배에 관련된 문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문제,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한 문제, 아볼로 목사님에 대한 문제 등 고린도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바울 사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상세히 답변하였습니다.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사랑의 은사인데,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이 있던 고린도에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사랑이 얼마나 다른지 대조하며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에베소 사역 중에 잠시 고린도 교회를 한 번 더 방문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괴롭히던 문제들의 중심에는 지나치게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생각, 이원론적인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 철학에 기반된 사상으로 이를 통해서 당시 에피쿠로스 학파라 불리는 쾌략주의와 스토아 학파라고 불리는 금욕주의가 나왔습니다. 두 사상 모두 물질적인 몸과 영적이고 신성한 영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금욕주의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기 때문에 육은 절제하고 금욕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금욕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옳고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우상에게 바친 음식과 음료 등을 거부하며, 육체의 부활은 없고 오직 영의 부활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쾌락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영만 선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의롭다면 육이 아무리 더러워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적 죄악을 지어도 세상 법정에 형제 자매를 고소해도,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관계 없이 먹고, 성찬 자리에서 포도주를 지나치게 마셔서 술에 취하고, 성에 따른 역할을 무시하고 예배 모임 가운데 무질서함을 일으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두 극단의 사람들이 서로 파당을 나누어 심한 갈등 상태에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쓰고 난 뒤, 사도 바울은 자기와 함께 있던 디모데를 보내어 편지를 전해주고 사도 바울이 도착하기 전까지 교회를 돌보길 부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바울은 심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사도 바울을 크게 비방하고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큰 충격을 받아 다시 사역하고 있던 에베소로 돌아와서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편지를 써서 디도의 편으로 고린도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이 편지는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눈물의 편지를 보낸 뒤 바울은 에베소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 에베소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니아 속주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자기에게 돌아온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눈물의 편지를 읽고 마음을 돌이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기쁜 소식을 들은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다시 고린도 교회에 보낼 편지를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고린도 교회에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쓰던 편지 내용에 거짓 사도들을 경고하는 내용까지 추가해서 편지를 완성하고 그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이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 입니다.

고린도후서에는 10장을 경계로 해서 고린도 교회를 위로하는 내용과 거짓 사도들과 씨름하는 내용으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바울을 대적했던 사람들의 정확한 정체는 전해져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이 거짓 사도들을 반박하는 내용을 비추어 그들의 정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성령, 다른 복음을 전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대적자들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추천서를 들고 와서 누구도 놀랄만한 환상이나 영적 체험, 계시 등을 자랑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말솜씨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특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랑해야 할 것은 약함과 고난인 것을 밝히고 약한 자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칩니다. 

고린도후서를 받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 때 당시는 아니지만 2세기 경에 로마 교회의 목사님이었던 클레멘트의 편지를 보면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간곡한 편지에 감화되어서 바른 길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다시 방문하고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에는 사도 바울과 함께 2차 전도여행을 했던 실바가 맡게되었습니다. 현재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 교회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풍요롭고 화려하며 좋아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과 생각과 사상에 휩쓸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믿는 자의 방식과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람을 판단하였습니다. 드러나는 것, 영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고 나타내길 바라는 은사는 사랑의 은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이 있던 고린도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길 원하셨습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말솜씨로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약함과 고난 가운데 진정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성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그런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세상의 사상과 생각과 가치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상과 생각과 가치관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재니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절 -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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