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5일 일요일

하나님의 사랑 (이사야 22장 12-14절 / 21.07.26)




이사야 22장 12-14절

12절 :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절 :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14절 :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제목 : 하나님의 사랑


서론 : 심판 받았던 유다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 왕의 통치가 끝나고 유다에는 히스기야 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히스기야는 마치 저번주에 살펴보았던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가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악한 왕 아하스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앗수르의 신들을 섬기게 되어 나라가 엉망이 되었지만,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 아하스가 세웠던 우상들을 모두 찍어버리고 유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온 유다 왕국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데 힘썼지만, 여전히 백성들 가운데서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읽었던 이사야 22장은 환상의 골짜기에 대한 경고인데, 환상의 골짜기는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시온 산 위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주변에는 깊은 골짜기들이 많았고 이 깊은 골짜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은 굉장히 함락시키기 어려운 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 골짜기가 자신을 더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골짜기를 더욱 신뢰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지키시는 하나님보다 예루살렘 주변의 골짜기를 더 신뢰하는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왜 앗수르와 주변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환상의 골짜기에 대한 경고에 마지막 부분입니다. 함께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잘못한 일은 무엇이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길 원하시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회개가 필요한 유다 (12절)


오늘 말씀은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8장 13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처들어왔습니다.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을 쳐서 점령하고 이제 예루살렘만 남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앗수르 군대를 막을 힘이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최후의 수단으로 앗수르 왕과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협상이 통했습니다. 앗수르 왕은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받고 유다 땅에서 물러가기로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창고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내어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아주 굴욕적인 협상을 하였지만 이 협상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굴욕적인 협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협상에 대해서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이사야 22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1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2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예루살렘 사람들은 히스기야 왕이 마련한 은과 금을 가지고 물러가는 앗수르 군대를 보기 위해서 지붕 위에 올라갔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앗수르 군대가 퇴각하는 것을 보며 소란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굴욕적인 협상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앗수르 군대가 물러가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 군대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소란하며 떠들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즐거워 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허리에 띠우길 원하셨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회개하길 원하셨습니다. 앗수르 군대를 통해서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그들의 믿음을 경고하길 원하셨고 그것을 깨달아 회개하길 원하셨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유다에 쳐들어 온 것도, 그들이 돈을 받고 물러난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자신의 불신앙을 깨닫고 회개하길 원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은 오히려 즐거워하고 씨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론2 : 회개하지 않는 유다 (13절)


13절에 이르면 유다 백성들의 상태가 더 심각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통곡하고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옷을 입길 원하셨는데 오히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행동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그들에게 알리지 않아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앗수르 왕의 군대가 물러가는 것을 기뻐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 벌을 내리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이 단순히 집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목숨을 잃을 것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내일 죽을 것을 알기에 지금 먹고 마시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눈으로 목격하고도 지금은 앗수르 군대가 물러갔으니 소를 잡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일 죽게 된다는 것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기만 할 뿐, 전혀 하나님께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지금 즐기고 할 수 있는 한 즐겁고 기쁘게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죽게 되는 일에 집중하여 오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 가운데 가득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오늘의 즐거움을 사랑하였고 여호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본론3 :  용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1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친히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온 세상의 모든 군대의 주인되신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앗수르 군대가 온 유다의 성읍을 친 것도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뜻을 계획하시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계획하시고 움직이시고 시행하셨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믿지 않았고, 알았지만 감사하지 않았으며, 알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앙망하거나, 앗수르 군대가 물러가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죄악을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죽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죽어야만 이 죄악이 용서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 왕의 군대가 히스기야의 굴욕적인 협상을 통해서 물러갔지만,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앗수르 군대는 다시 찾아옵니다. 이 때 유다와 예루살렘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36장에서 39장에 이어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죽기까지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온 세상의 군대의 주인 되신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살이 했던 애굽에서 값을 치르고 자기 백성으로 삼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지만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시고 사랑하시고 그들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복을 받고 그 복을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 나눠주는 복의 근원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자기 살 길에 급급하였고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이시며 만군의 주이신 권위와 자격으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이유


지금까지 만군의 여호와께서 분명한 경고를 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선포하시는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거부하는 종들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주인 되신 것을 포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자신을 주 만군의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애굽에서 백성들을 구원하여 낸 백성들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다시 알려주십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아직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죽기까지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계속 벌을 주십니다. 그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 옷을 입기를 기대하며 벌을 주실 것입니다. 벌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라며 그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벌을 주실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미 받은 구원과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완전히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찬양 : 벌 받으신 그리스도


구약 성경 전체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고 떠나가고 돌아오고 떠나가는 이런 끔찍한 반복을 계속 이어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지만 얼마 못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자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돌아서고 하는 끔찍하고 비참한 반복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이런 반복 가운데 이 반복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희망이 있으며, 우리를 위해 대신 속죄하여 주실 대속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미숙함과 미진함을 뛰어넘는 완전하고 무결한 대속자, 이새의 가지에서 나게 될 다윗의 자손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시대 많은 사람들이 구하고 기대했던 온전하고 무결한 대속자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비참한 종살이에서 구하셨기 때문에 주인이 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한 신세를 끝내시고 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 주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라고 우리가 부르면 예수님을 부르는 칭호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충분히 주라는 칭호를 받으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던 비참하고 끔찍한 반복 속에 잡히지 않도록 우리를 붙드시고 이끌어 주시며 견디고 이기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삐딱 걸음을 걸을 수 있고 잠시 길을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하여 벌을 받으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 지신 그 사건은 변하지 않기에 우리는 여전히 주님께서 이루시고 베푸신 구원과 은혜가 변하지 않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저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며 돌아가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며 복음입니다. 이 복음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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