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1장 1-9절
1절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절 :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절 :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절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절 :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절 :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절 :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절 :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절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제목 : 평화의 나라
서론 : 황폐한 숲과 같은 예루살렘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선하고 신실한 왕으로 웃시야 왕의 다스림 안에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웃시야 왕은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요담 왕은 아버지를 따라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요담 왕은 16년 만에 죽었고 웃시야의 손자인 아하스가 왕위에 올랐는데, 아하스 왕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앗수르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하스 왕의 죄로 인해서 분노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죄는 왕 한 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짓는 죄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짓는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경고하였고 예루살렘이 나무가 베임을 당하듯이 무너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10장 33절에서 34절 입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약속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지를 꺾어 버리듯이, 쇠도끼로 나무를 베어 버리듯이 없애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왕궁은 레바논이라는 지역에서 나는 아름다운 나무인 백향목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레바논이 권능 있는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레바논으로 지은 예루살렘의 궁전을 철저히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철저히 파괴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철저히 파괴한 예루살렘 가운데 일어날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숲으로 비유된 예루살렘 가운데 새로운 줄기를 내시고 한 가지가 나게 하십니다. 이 새롭게 나는 가지는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예루살렘의 싹이 될 것입니다. 싹은 자라고 자라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신 평화의 나라를 이룹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평화의 나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1절 - 2절)
예루살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서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혁혁한 위력으로 모든 가지를 꺾으셨습니다. 강대했던 애굽을 꺾으신 그 능력으로 애굽 땅에서 구원하여 낸 이스라엘을 꺾으셨습니다. 특히, 다윗이 지었던 레바논 백향목 궁은 철저히 파괴 되었습니다. 권능 있는 자의 손에 그 빽빽한 숲이 베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궁궐 건물이 파괴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지던 다윗 왕조의 파괴를 뜻합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 더 이상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의 왕노릇할 자가 나오지 못하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집안과 같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과 다윗 왕가는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베임을 당하여서 그루터기만 남은 상황입니다. 어떤 회복의 희망도 보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완전히 망한 줄 알았던 다윗 왕가와 예루살렘에, 폐허와 같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을 나무 밑둥만 남겨진 광막한 그 곳에,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다시 줄기를 나게 하시며, 싹이 나게 하시며, 결실할 때까지 자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한 사람이 나와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아 멸망해버린 것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회복하여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서 다윗의 왕위를 물려 받을 다윗의 자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감당해야 할 것들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며 그를 도우고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롭고 총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도록 하실 것입니다. 모략과 재능을 주셔서 이해한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또한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교만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도록, 범죄하지 않도록 붙드실 것입니다.
본론2 : 공의와 정직과 성실 (3절 - 5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 이야기 합니다. 다윗의 자손은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을 것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높고 높으실 뿐만 아니라 능력과 권세가 많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어쩔 수 없이 경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은혜를 주시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또한 주실 은혜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일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을 즐겁게 감당합니다. 이 즐거움은 다윗의 자손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는 온 나라 가운데, 온 백성 가운데 즐거움이 됩니다.
다윗의 자손은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한계가 있습니다. 눈과 귀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디론가 치우치기 쉬워서 눈으로 보아도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귀로 들어도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은 그의 눈과 귀를 믿지 않고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공의와 정직의 기준으로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합당한 재판을 행할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에게는 한 없이 자비롭지만, 악인들에게는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칠 것입니다. 막대기라는 말은 왕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화려한 장식을 붙인 막대기를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의 입으로 하는 모든 판결은 세상 어떤 권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근거로 하는 판결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입술의 기운은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의 권위를 빌어 다른 말이나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로 심판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그 일을 공의와 성실함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공의와 성실의 허리띠를 매게 하실 것입니다.
본론3 : 거룩한 산 (6절 - 9절)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베풀어진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은 해 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삽니다. 이리는 늑대와 같이 개과의 육식 동물입니다. 이리에게는 어린 양이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먹잇감과 맹수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어울러져 사는 관계로 변하게 됩니다. 표범과 어린 염소도, 암소와 곰도 평화의 나라에서는 함께 어울러져 사는 관계가 됩니다. 그들이 먹을 것은 더 이상 서로의 고기가 아니라 함께 풀을 먹습니다. 평화의 나라에서 그들은 함께 눕고 함께 살게 됩니다.
평화의 나라에서는 먹잇감과 맹수의 관계 뿐만 아니라 힘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생깁니다.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어린 아이에 의해서 끌려다니게 됩니다. 충분히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은 어린 아이를 압도하고 어린 아이가 그들에 의해서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서로의 주도권을 위한 싸움이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다스리는 힘의 관계가 없습니다. 함께 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서로에게 내어줍니다. 서로를 해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어주기 까지 사랑하는 관계만 남습니다.
평화의 나라에서는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해로운 것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를 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을 통해 다스리실 그 평화의 나라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 때에 세상은 해 됨도 상함도 없어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기 것을 위하여 남의 것을 뺏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의 생명을 보전하고 지키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서로를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을 통해 다스리시는 그 나라는 해 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입니다.
결론 : 해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나라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해 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입니다. 사실 평화라는 말로는 이 나라를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분쟁과 다툼이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나라에서는 이해와 조화를 뛰어 넘는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귄위와 말씀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서로에 대한 조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모든 사람과 만물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충만할 때 이루어집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한 자가 심판 받고 겸손한 자가 세상 가운데 판단 당할지라도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시는 그 나라에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그들이 받기에 합당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찬양 :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다윗의 자손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셔서 다윗의 왕위를 받아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습니다. 이 사실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예수님의 왕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40일 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을 가르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온 세상을 운행하시는 섭리주 되신 하나님의 권위를 잇는 왕의 자리에 앉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주가 되시고 세상의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주님이 되십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하러 오실 때에 우리는 오늘 읽었던 말씀이 실제로 우리 눈 앞에 이루어 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공의와 정직과 성실로 이 땅에 모든 것을 심판하시며 판단하실 것이고,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를 구분하시며, 악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해 됨도 상함도 없는 그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끝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울창하고 빽빽한 숲이 베임 당하고 찍혀서 아무 것도 남지 않아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 가운데서도 새롭게 가지를 내어 결실을 맺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마지막 그 날이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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