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 일요일

오직 하나님만 (이사야 44장 9절-20절 / 21.08.15)




이사야 44장 9-20절

9절 :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절 :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1절 :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2절 :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13절 :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4절 :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15절 :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절 :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절 :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절 :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19절 :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절 :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제목 : 오직 하나님만


서론 : 하나님 외에 신이 있겠느냐?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까지 4대에 걸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지금까지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시대, 아하스 시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하였던 대표적인 장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사야는 지금까지 왕과 그 백성의 행동에 따라 예언하였습니다. 왕과 백성들의 행동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벗어나는지 아닌지를 살피고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서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하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실지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은 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꼭 마지막에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어가는 이사야 40장 이후의 말씀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39장에서 히스기야 왕에게 내렸던 예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될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40장에서 55장은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56장에서 66장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게 될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44장은 유다 백성들이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우상도 섬겼던 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의 허망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유에 대해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우상을 만드는 자들 (9절 - 14절)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다는 말로 우상의 허망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 허망한 자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은 신의 형상을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거나, 아니면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을 녹여서 틀에 찍어서 만듭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크게 철공과 목공이 있는데, 철공들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힘센 팔로 그 일을 합니다. 목공들은 줄을 늘여서 길이를 재고 붓으로 그 모양을 긋고 대폐로 밀고 곡선자를 따라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듭니다. 보통 사람은 따라할 수 없는 숙련되고 전문적인 기술로 우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숙련된 전문가를 일반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여겼고 그들이 만든 우상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상 만드는 자들도 똑같은 인간이며, 그들이 배가 고프면 힘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피곤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상 만드는 자들이 특별한 자들이 아니라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드는 자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있었는데, 우상 만든 자들이 만든 우상을 증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철공과 목공이 만든 우상이 정말 우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보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증인들은 철공과 목공들이 신상을 만들면 그것을 보고 신을 표현한 것이 맞는지 아닌지 검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적 감각을 타고난 사람일 것 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보증을 다른 사람들이 손 쉽게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권위를 가진 사람일 것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권위와 감각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신상으로 보증하는 것은 한낱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만든 사람의 모양일 뿐입니다. 자신들을 신을 만들었고 신의 형상임을 증명하고 보증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으로 만든 돌덩이, 나무 조각, 금덩이, 은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우상을 증명하고 보증하는 자들은 신상을 만들며 자신들을 신의 대리자, 신의 종 인양 행동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신과 가까운 자로 여기고 두려워 하며 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이신, 홀로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일 뿐입니다. 다른 신의 종이나 대리자가 아니라 한낱 인간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두려워하게 하시며 함께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본론2 : 우상을 만드는 재료 (15절 - 17절)


우상을 만들 때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백향목과 디르사 나무, 상수리 나무를 베어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나무들은 크게 자라는 나무들로 땔감으로 사용하기 적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 위치한 건조하고 뜨거운 곳처럼 여길 수 있겠지만, 지중해성 기후로 나무가 자라기에는 정말로 좋은 환경입니다. 또한 겨울에는 눈이 내리기도 하는 등 기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백향목이나 디르사 나무, 상수리 나무를 심고 비를 맞히고 키웠습니다. 이렇게 키운 나무를 베어서 땔감에 사용하였습니다.


땔감은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었습니다. 겨울이나 쌀쌀한 날에 자기 몸을 덮게 하기도 하고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합니다. 고기를 구울 때에도 빠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땔감으로 사용되는 나무들 중에 남은 것들을 가지고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그저 불에 태워질 연료에 불과했던 나무를 깎아서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면 그것을 신으로 인정하고 그것 앞에 절하고 섬겼습니다. 그 앞에 절하고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땔감에 불과했던 나무들을 사람의 생사화복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신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원래 그 나무들의 생사화복은 사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를 길렀습니다. 그를 베어 버린 것도 사람이었고 그것을 불에 집어 넣은 것도 사람입니다. 그것을 신상으로 만들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땔감으로 쓰기 위해 자기 손으로 심고 키우고 베었던 나무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안타까운 현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여 주십니다.


본론3 :  깨닫지 못하는 이유 (18절 - 20절)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이 우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졌다는 말은 눈이 완전히 회칠을 한 것처럼 가리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 벽돌을 쌓아 놓고 그 벽이 매끈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시멘트를 바르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것처럼 눈 위에 어떤 것으로 펴발라 놓아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말은 눈이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빠지는 혼란한 상태입니다. 눈이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마음은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눈이 가려져서 마음이 어두워진 자들은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습니다. 어떤 것을 사려 깊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챌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좋게 여기는 것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 일은 자기 손으로 심고 키우고 베어낸 나무를 가지고 절반은 땔감으로 쓰고 절반은 신상으로 만들어 절하는 일입니다. 자기 손으로 키운 나무에게 자기의 목숨을 맡기며 자신의 행복을 비는 허망하고 무익한 행위를 반복합니다. 정말로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들은 허망하고 무익한 행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은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재를 먹습니다. 재는 나무를 태우면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 토막 뿐만 아니라 나무를 태우고 나오는 재 또한 귀하게 여겨 먹습니다. 그저 땔감으로 사용된 나무의 재가 어떤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재를 먹으며 간절히 자기가 만든 나무 토막에 매달리지만 오직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자기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허탄하고 무익한 것에 마음이 뺏겨서 자기가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도 모른채 나무 토막에 굴복합니다. 자신을 구원할 줄 알았던 나무 토막을 의지하므로 더욱 더 하나님께 죄를 더하는 끔찍한 굴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결론 :  거짓된 신, 우상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한 일인지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전하시고자 하시는 뜻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으로 만든 우상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을 만든 철공과 목공들은 사람에 불과하고 우상은 땔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허망하고 무익한 우상을 벌하실 진정한 창조주이시며, 백성을 구원하실 구속자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자신의 눈을 가리는 거짓을 때어주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나무 토막 앞에서 굴복하는 허망함에서 벗어나 무익한 일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찬양 : 참 구속자 되신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모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부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는 방법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 뿐인데, 그 벌은 죽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죽음 이 후에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누리고자 하는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해서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신 죄의 저주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저주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시므로 우리를 향한 완전한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시고 죽으셔서  장사지낸 바 되시고,그 값이 모두 충분하게 치뤄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일이 없다고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버리신 분이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그 복되고 사랑이 넘치는 통치 가운데 우리가 살아갑니다. 오직 예수님만 통해서 이 구원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 토막과 같이 허망하고 무익한 것에 매달리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라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섬기는 자 입니다. 이 은혜와 복을 오직 예수님만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