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2일 일요일

야고보서 1장 1절-18절 (21.9.13)

야고보서 1장 1절-18절

1절 :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절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절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절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절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절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절 :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절 :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9절 :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절 :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절 :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2절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절 :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절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절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절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절 :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절 :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제목 : 믿음의 시련


서론 : 주의 형제 야고보의 편지 (1절)


이제 본격적으로 야고보서를 시작합니다. 야고보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가 쓴 서신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주의 형제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형제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다만 자신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혈연적인 정체성보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이 되길 택하였습니다.


야고보가 편지하는 자들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입니다. 열두 지파는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큰 박해가 일어나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큰 박해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야고보가 참수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야고보는 학대와 시험으로 인하여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학대 중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보여주길 두려워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이 편지에 담았습니다. 이제 인사는 끝났습니다. 야고보는 본격적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본론 1 : 시험과 온전한 인내 (2절-4절)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를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형제들이라는 표현은 신약 시대에 같은 믿음을 가진 교회 구성원들에게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습니다. 단지 남자 성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 성도들도 가리켜서 같은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속한 모든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험을 당할 때에는 오로지 기쁨만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험을 당할 때를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시험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하려는 외부적인 시험과 죄를 짓게 유혹하는 내부적인 시험이 있습니다. 야고보가 시험이라고 말했을 때는 이 둘 다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야고보의 편지를 받아 보던 독자들은 가난이라는 외부적이며 내부적인 시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었기 떄문입니다. 형제들은 가난에 시달렸고 또한 가난 뿐만 아니라 부자들에게 억압 받고 비방 당하였습니다. 형제들이 당하는 시험은 종교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시험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데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인내를 만듭니다. 인내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신실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근육이 저항력을 만나 강해지듯이 인내는 시험을 만나 강해집니다. 시험 가운데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신실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신실하신 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 또한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전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온전하고 성숙하게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본론 2 : 지혜와 온전함(5절-8절)


지혜는 구약 성경에서부터 강조되던 개념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산상보훈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우리에게 온전한 지혜를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하신 말씀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고 온전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지혜를 받을 때에 말씀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은 온전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온전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과 간구는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은 내적으로 일어나는 논쟁과 같습니다. 논쟁에 시달려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일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가 찾아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에 웃었습니다. 이 웃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전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일관되게 순종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씨를 통해 민족을 이룰 것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순간 그 말에 의심을 품었을 뿐, 변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믿음의 일관성, 온전함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이리저리 떠밀려 일렁이는 바다물결처럼 하루는 하나님의 지혜를 하루는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일관성 없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온전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어떤 것도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아버지는 온전한 자식을 원하십니다. 온전하게 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본론 3 : 부함과 가난 (9절-11절)


낮은 형제는 천하고 가난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야고보가 편지를 보내는 형제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는 방랑자의 신분입니다. 그들은 어떤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자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의 눈으로는 가난하고 천한 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한 자는 고귀하고 풍족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야고보의 편지를 받아보는 형제들 중에서는 부자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부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더욱 드러내라고 그리스도의 제자된 겸손한 삶을 세상 앞에서 자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결국, 야고보는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그리스도인인 것과 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부한 것이나 가난한 것이나 모두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풀에 달려 있던 꽃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재물은 쉽게 없어지고 자기 재물과 위치를 자랑하는 교만한 부자 또한 쉽게 없어질 꽃과 같은 것을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우리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며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우리의 믿음 뿐입니다. 부와 가난이 우리에게 시험은 될 수 있으나 우리에게 두 마음을 품도록 하는 걸림돌이 될 수 는 없습니다.


본론 4 : 시험과 상 (12절-18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험과 시련에는 보상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상태를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개인의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선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생명의 면류관 입니다. 이 면류관은 왕관이 아니라 운동경기에서 경주를 끝내 완주하고 받는 월계관을 가리킵니다. 순종과 인내라는 운동 경기를 마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월계관을 수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 받음으로 생명을 받았고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영생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순종과 인내의 모든 경주를 마친 자만이 감사할 수 있는 참된 보상일 것 뿐입니다.


사람은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은 아까 말했듯이 외부적인 시험과 내부적인 시험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하나님께서 믿음과 인내를 단련하게 하시는 시련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시험,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유혹은 사람 스스로 받는 유혹이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데로 기울여지는 사람의 욕심을 나타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하여 내부적인 시험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악으로 유혹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고 후회하지 않으시는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각 사람의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일 뿐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을 뿐입니다. 사람이 욕심의 유혹에 굴복하여 욕심에 몸을 맡기게 될 때에 그 결과는 오직 사망 뿐입니다.


형제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사망이라는 나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람을 위하여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에게 나쁜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는 해와 달과 별이 회전하며 그림자를 만들 때에도 회전하지 않으시고 그림자가 없으신 빛의 근원이시며 모든 것의 창조주 이십니다. 변함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후히 주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첫 열매로 삼으시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된 성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원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가운데 가장 자랑할 만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시험을 통해 온전함을 바라시는 하나님


야고보서가 기록될 때,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예루살렘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가난함이었습니다. 떠돌아 다녀야 하는 그들의 삶 속에서 시험을 견뎌야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 상황을 보며 이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시험 중에도 하나님께서 온전하시듯 우리 또한 온전해야 함을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행위의 일치, 말과 행동의 일치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닮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된 우리의 생각과 몸과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어디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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