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장 22절 - 31절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제목 : 좁은 문과 넓은 은혜
하나님의 구원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일상 속에는 우리의 생업도 있고 휴식도 있고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일상을 멈추고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 드립니다. 적게는 한 시간, 많게는 하루 종일을 교회에 머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준비하고 참여합니다. 자신이 보내야 할 일상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여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 기도를 받아주시고 말씀과 성례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13장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구원에 대한 모든 면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어떤 사람이 와서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제 갈릴리의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시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각 성에 들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며 여행을 하셨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질문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알 수 없습니다. 질문한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명확합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이 적은지 많은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사 속에서도 이 질문은 많은 신학자들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또한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것이라는 주장과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을 자를 정해놓으셨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라는 주장이 공존해왔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가 어떤지 간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모인 무리에게도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귀를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듣고 사람들이 알아 듣기 쉬운 비유를 들며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좁은 문과 집 주인
예수님께서는 구원은 마치 좁은 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좁은 문과 같아서 그곳에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 힘쓰고 애쓰는 사람도 못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좁은 문의 주인인 집 주인이 그 문을 닫아 버린다면 더 이상 구원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그 닫힌 문을 두드려도 집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좁은 문의 의미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좁은 문이라고 해서 통과하지 못할 문은 아닙니다. 문이라는 것은 지나다니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기서 좁은 문이라고 하는 것은 그 문을 한 사람 정도만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자주 겪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내렸는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밖에 없을 때,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까지 기다립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문에 들어가기 까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에 힘쓴 대표적인 세 사람의 이름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막막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때에 완전히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은 아니였지만, 신실하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한 이야기처럼 험악한 세월을 견디었습니다. 그들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잔치를 참여할 것입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은 길고 긴 줄을 서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줄이 지겹고 재미없어서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은 항상 열려있지 않습니다.주인께서 문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 주인은 자기 집 문을 마음대로 열고 닫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자기 문을 가지고 열고 닫는 일에 대해서 집 주인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곳에 마음이 빼앗겨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 사람의 잘못입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열어달라 소리쳐도 집 주인의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잔치를 그들 자신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넓은 은혜 : 언제나 어디서나
일방적으로 문을 닫은 집 주인이 매우 엄하고 냉정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 주인의 초대를 받아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구성을 보면 우리의 입장은 달라질 것입니다. 집 주인이 초대한 사람들은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동서남북의 방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종과 종족을 망라한 온 인류를 말하는 표현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동쪽으로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서쪽으로는 모든 유럽의 서쪽 대륙, 북쪽으로는 여러 야만족들이 살던 게르만과 스코틀랜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은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민족들과 왕래하였습니다. 특히 에수님이 주로 사역하셨던 갈릴리 지방과 유대 지방은 동서 문화의 교차로라고 부를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동서남북은 전국 방방곡곡과 같은 우리나라 전체를 일컫는 말로 들리지만, 고대 로마 시대 유대인들에게는 온 세상 천지에 흩어진 모든 사람을 뜻 했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조건이 어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먼저나 나중이나 시간 순서나 시간 양에 관계 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함께 잔치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언제 믿었는지 얼마나 믿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순서와 보상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신 천국 잔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시간과 장소, 인종과 사회적 직위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을 초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건 없이 우리를 초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지만 베풀어 주신 호의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진정 누리기 위해서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신 믿음을 지키고 신실해야 합니다.
좁은 문, 좁은 그 언약에 들어가기 위한 신실함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고합니다. 이를 통해 언약에 신실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 처음에는 한 가족으로 시작했습니다. 적은 무리여서 이리 저리 방랑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붙들고 기다렸습니다. 그 약속은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시편 105편 9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 이런 약속을 받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속한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으로 떠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억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그 왕들과 민족에게 나타나 꾸짖으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애굽에서 나그네가 된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하게 되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만한 수로 늘게 하셨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변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미워하게 하시고 괴롭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 둘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있던 사 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옛날 이야기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지키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지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시편 105편 42절에서 45절 말씀입니다.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과 같이,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태도입니다.
뜻하지 않는 환란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셨듯이 우리도 언약에 신실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문에서 헤롯에 의한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선한 일을 하는데 헤롯 왕과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여러 무리들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역대하 20장에 유다 백성들이 예수님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역대하 20장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 있을 시기에 남유다 왕 여호사밧 때 일어난 일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아합 왕과 친하게 지낸 것을 빼고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던 왕이었습니다. 그가 다스리던 때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남유다를 치려고 군대를 이끌고 엔게디까지 진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진실하게 살던 왕과 백성 앞에 뜻하지 않은 위협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었던 여호사밧은 즉시 여호와께로 얼굴을 향하여 이 나라를 지켜줄 것을 간구하고 백성들에게 금식을 공포하여 함께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들은 유다 사람들은 각자 살던 성읍을 떠나 성전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성전 앞에 모인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사밧의 기도 중 특징적인 것은 바로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7절과 9절입니다.
7절 :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9절 :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 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그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대로 신실하게 역사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영이 레위인 여하시엘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은 조금 황당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무장 할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이 대열을 이루고 모압과 암몬 군대 앞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여하시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대열을 갖추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에 갔습니다. 왕은 백성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행진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두신 복병이 일어나 유다를 치러 올라온 암몬과 모압 군대를 쳤고 그들은 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뜻하지 않는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과 무기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돈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기도를 통해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이 두 약속은 여호사밧 시대 때만 해도 2,000년 전, 100년 전에 주셨던 약속입니다. 하지만 여호사밧 왕은 이 두 가지 약속을 기억하고 이 약속을 신실하게 이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그 약속에 응답하셨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실함, 좁은 문의 열쇠
우리는 시편 105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통해서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과해야 할 구원의 좁은 문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그 좁은 문을 열어 두실 것이고 우리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음을 믿고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이미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 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을 가졌는지도 알 수 있지만, 그들의 상황과 형편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언약에 신실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있기에 순서와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약속만이 중요합니다. 그 뜻과 약속을 믿고 좁은 문을 향한 고되고 힘든 여정을 신실하게, 변함없이 견디어 내는 성도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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