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29 - 39절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제목 : 의인의 피를 기억하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둘러쌓여 그들과 치열한 논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논쟁이 거듭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에수님께 질문을 할 수록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메시야를 향한 마음은 있지만 비뚤어지고 오염되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위한 메시아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비뚤어진 소망을 지적하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예수님을 공격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그 말씀을 지키고자 누구보다 더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와 생각과 가르침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에는 어긋나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일곱 번의 화를 선포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은 그 마지막 화를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섬길 때에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일곱번 째 화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일곱 번째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화는 하나님 아버지부터 나오는 화이며 그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렬한 분노입니다. 그러나 이 화는 아직 화의 대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그 행위와 생각에서 돌이켜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에수님께서 선포하신 화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들이 닥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화가 나신 일곱 개의 이유를 말씀하셨지만, 사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미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외식하는 그 자세와 행동입니다. 외식이라는 말은 바깥을 장식한다는 의미합니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바깥만 꾸며서 그럴 듯 하게 보이는 것이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외식입니다. 특히 일곱 번째 화에서 지적하시는 외식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워 꾸미는 행동을 지적하십니다.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의 무덤을 멋있게 꾸미는 풍습이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무덤을 잘 꾸며서 죽은 선지자의 생애와 업적을 존경하는 표시로 삼았습니다. 또 자신이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시기에 살았다면 선지자를 죽이는 데 참여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이 행동에 대해서 외식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조상은 그 아름다운 무덤에 묻힌 선지자를 죽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선지자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조상이 무덤에 묻힌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냉정하게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깨끗한 척, 거룩한 척하는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그들의 조상이 했던 일을 마무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선지자 중에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그들이 죽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씁입니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예수님께서는 좀 더 수위를 높혀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주 뱀이나 독사의 자식이라는 멸칭을 사용하십니다. 이는 눈 먼 인도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더한 멸칭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된 계기가 바로 뱀의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와를 유혹한 뱀과 같이 멸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곳으로 유대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뱀이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았던 것처럼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뱀과 독사의 자식과 같은 지도자들의 인도를 따라 죽음과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자기 백성을 아끼셔서 선지자와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죽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 저 동네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 역사가 아담의 아들인 아벨의 피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이릅니다.
아벨에서 사갸라까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로운 선지자, 지헤 있는 자, 서기관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대교의 성경 배열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역대하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창세기에서 등장하고 사가랴는 역대하에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의 죽음을 언급하시는 이유는 구약 성경 전체에 기록된 모든 의로운 자의 죽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의로운 자의 피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책임을 이 세대, 예수님 당시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선포하신 뒤 40년 뒤인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의인화 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와 의인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의 죄를 다시 고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아끼시기를 암탉이 그 새끼를 자기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병아리는 아직 어려서 자기 체온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탉은 자기 날개 아래로 병아리를 모아 체온을 유지시킵니다. 또한 다른 닭의 천적이 나타났을 때에도 날개 아래 새끼를 숨기고 천적들로부터 자신의 새끼를 지킵니다. 암탉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자기 새끼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날개 아래 들어가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행동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인들을 죽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한 예루살렘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버려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암탉의 보호 없이는 병아리는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천적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황폐하여 버려진 집으로 예루살렘의 처지를 비유하십니다. 옛날 바벨론에 의해서 철저히 무너졌던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만드는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는 다시 회복하게 하셨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으로인해 황페하게 된 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약속으로 인하여 70년 만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시 예루살렘이 예수님을 볼 때가 마지막 날, 온 세상이 예수님의 재림을 찬송할 때에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번 한 번 뿐입니다. 다른 민족들이 다시 오신 예수님을 찬송하며 즐거워 할 때, 그들 또한 함께 찬송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외식을 버리고 돌이켜서 예수님을 다시 가르쳐 주신 율법과 성경이 원래 말하고 있던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의 분량을 채울 유대인들
지금까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보낸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거부하고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들의 생애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름답게 무덤은 꾸미지만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는 외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뱀과 독사의 자식이라고 평가하시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은 정말로 약 40년 후 로마 제국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실제로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그 시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경고이긴 하지만, 우리에도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만 치장을 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거룩한 행동, 거룩한 일이라고 치장하고 쉽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합리화 시킵니다. 우리는 이런 그릇된 외식을 그만 두고 솔직하게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회개는 나의 죄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조상이 미처 하지 못한 분량을 채운 것입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베푸신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된 성령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는 이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나를 돌아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식을 드러내실 것이며 깨닫게 할 것이며 돌이키도록 은혜를 배풀어 주실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멸망 받지 않을 수 있는 은혜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솔직한 삶을 살아내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