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6일 토요일

다윗의 시대는 가고 / 열왕기상 1장 1 - 10절

열왕기상 1장 1 - 10절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제목 : 다윗의 시대는 가고


열왕기상은 다윗 왕의 말년부터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 왕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에 기록된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하나였던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그렇게 지내게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왕기상이 왕국의 분열과 남북의 갈등 혹은 협력에 대한 사건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상은 사실 나열을 뛰어넘어서 이 사건이 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고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상은 역사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신학책으로 읽어야 합니다.


신학책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척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 말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열왕기상 이야기 겉으로 드러난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인물들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세우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늙은 다윗 왕과 야심찬 그의 아들 아도니야의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어떻게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비삭을 구해 준 다윗의 신하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아름답고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씀을 들을 정도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에 힘썼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시간이 가면 늙기 마련이며,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사무엘서에서 기록된 다윗과는 다르게 열왕기상의 다윗은 너무나 무력해서 자기 체온조차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다윗 왕의 건강을 위하여 곁에서 받들어 모실 한 여자를 구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수넴 여자 아비삭입니다. 아비삭의 역할은 다윗 왕을 곁에서 도우면서 그를 간호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아비삭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다윗은 그와 함께 잠자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경건함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다윗이 건강하니 못했고 권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할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본 그 날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때와 전혀 다른 쇠약하고 늙은 왕이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그런 다윗을 잘 보필하기 위하여 아비삭을 구했습니다. 아비삭도 신하들의 바람대로 다윗을 잘 보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젊고 강할 때에 모든 것이 다윗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운행해 나가십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다윗이라는 늙어서 약해진 왕이지만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노쇠한 다윗의 왕위를 누구든 노릴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하에 기록된 세바와 압살롬 같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셨으므로 다윗의 신하들은 다윗을 끝까지 받들어 모셨습니다. 잇사갈 지파의 땅 수넴에서 온 아비삭도 다윗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그를 잘 모셨습니다. 훗날 다윗 가문의 씨를 없애려고 한 아합 왕의 딸 아달랴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아도니야의 자격


다윗의 신하들과 수넴 여자 아비삭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을 받들어 모실 그 때,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입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 맞서서 헤브론에서 통치하던 시절에 낳은 아들로 다윗이 학깃이라는 여인을 통해 낳은 넷째 아들입니다. 참고로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던 압살롬은 셋째 아들입니다. 


아도니야는 그 형 압살롬과는 유사하게 심히 용모가 준수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왕이 될 만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주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단단히 약속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도니야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기로 작정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높이며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왕의 모습에 맞게 자기를 호위하는 병거와 기병, 그리고 50명의 호위병을 준비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아도니야는 충분히 왕위에 오를만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살아남은 아들 중에 가장 장자였으며, 외모와 능력도 왕위에 걸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보자면, 다윗의 첫 아들인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인 압살롬도 반역을 일으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의 둘째 아들인 길르압은 아마도 어린 나이에 죽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남은 아들 중 맏이는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였습니다. 그는 왕에 어울릴 만한 준수함을 가졌습니다. 이 표현은 사울에게도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의 준수함을 보고 그가 왕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보았습니다. 또한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은 적 없던 능력 있던 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그는 왕위에 오를 충분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음모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자 아버지의 신하들 중 자신의 지지 세력을 만들었습니다. 군대 장관인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 계획에 끌어들여 서로 모의하고 도왓습니다. 하지만 다른 다윗의 신하들은 아도니야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시위 대장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같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는 신앙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옛날 자기 형님 압살롬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에느로겔에 근방에 있는 소헬렛 바위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잔치는 그냥 잔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아도니야가 준비한 짐승의 목록이 제사에 드리는 제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도니야가 직접 제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제물을 제사 절차에 맞게 초대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자기 동생 왕자들과 아버지의 신하들을 불러 그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제사가 반란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그 자리에 선지자 나단과 시위대장 브나야와 다윗의 용사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자기 동생 솔로몬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아도니야는 스스로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고 그 뜻을 거스르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이용했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아도니야가 생각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


지금까지 열왕기상의 첫 이야기를 만나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어떤 한 사람의 능력으로 움직이는 것도, 어떤 한 사람의 소유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 나라를 스스로 소유하고자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신실한 주의 종으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체온도 조절하지 못하는 노쇠한 왕이었지만, 그의 신하들과 아비삭이 도와 그를 받들어 모셨습니다. 하지만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이미 아도니야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토록 달랐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아도니야처럼 스스로 주인 되기에 충분하다는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 위치와 능력과 평판 모두가 주인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의 맏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인물이 준수했던 것도, 다윗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도 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셨기 때문에 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도니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자리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것이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삼고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왕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갚을 수 없는 호의를 베풀어 주십니다. 스스로를 왕으로 세우지 말고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에 겸손히 순종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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