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8절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제목 : 기도하는 사이
기도 제목 보시나요?
올해 초에 유초등부는 유초등부에 등록된 모은 학생들의 이름과 그들을 위해 기도할 제목을 교회 곳곳에 붙였습니다. 카페에도 붙이고, 화장실에도 붙이고, 복도에도 붙여서 잠시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그 곳에 서 있을 때마다. 기도를 부탁 드리며 기도 제목을 곳곳에 붙여두었습니다.
기도 제목을 자세히 읽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 부분에 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 문구를 쓴 이유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나오는 친구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기도 받고 자라난 아이와, 기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는 다릅니다.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지만, 위기가 찾아올 때 얼마나 단단하게 믿음을 지키는지를 보면 기도의 배경이 있는 친구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 제목을 붙여 놓긴 했지만, 사실은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온 교회가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유아에게 세례를 줍니다. 왜냐하면 신자에게 아이를 주신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자의 자녀도 언약 백성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아 세례식 때 부모 뿐만 아니라 세례식에 참가한 회중도 서약에 참가합니다.
한 아이를 언약 백성 답게 살아가게 하는 일은 어느 누군가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교회 모두의 책임입니다. 과중하고 무거운 책임처럼 보이지만, 이 책임을 교회가 함께 나눠지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누시기 때문에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한 아이를 언약 백성으로 자라가게 하는 제일 첫 단계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사이가 되는 것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이
SFC 사역이나 교회 부서 사역 중에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학생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물어볼 때가 많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알면 그 학생의 대략적인 성향을 파악할 수 있고, 직접하기 곤란한 질문의 답을 얻어야 할 때 친구를 통해서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제가 물어볼 때도 있지만, 학생들이 먼저 와서 자기가 누구랑 친하다고 이야기 할 때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친한 친구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정말로 친한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냥 같이 놀고, 같이 지내니까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서적인 교류 없이 서로 편하기 위해서 같이 다니는데 그게 친한 걸로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저는 그 친구를 위해 10분 동안 기도할 수 있나? 하고 물어봅니다.
10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학생들끼리는 생활 패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한 5분 정도는 자기를 위해 기도하듯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학교 생활을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시험을 위해서 와 같이 자기를 위해서도 하는 기도를 친구에게 해주고 나면 한 2-3분 정도가 흐를 것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정말 지극히 사적인 영역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정서적 교류를 하면서 친구가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는지 알아야만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종종 자신의 사정과 자기 행동의 동기를 직접 설명하면서 기도를 부탁할 때가 있었습니다.
입니다.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골로새서는 로마 감옥에 갇혀 황제에게 받을 재판을 기다릴 때 바울이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이 감옥에 갇혀 있는지를 골로새 교회에게 설명하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길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실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고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유대 총독으로 바울의 사건을 맡았던 베스도는 바울이 황제에게 항소하지만 않았다면 무죄로 풀려났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황제에게 항소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황제 앞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해야 하는 큰 목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결코 어떤 잘못이나 부당한 대우로 인해서 갇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할 것을 간절히 부탁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하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깨어서 잠들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자기 사정과 형편을 알리고 그것을 잘 들어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거리를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관계를 기도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와 바울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볼 것은 에베소 교회와 바울의 관계 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라는 도시에 무척 가고 싶어했습니다. 2차 전도 여행 중 바울은 에베소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마게도냐로 넘어가게 됩니다. 마게도냐에서 아가야로 내려오면서 전도하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갈 때 잠시 에베소에 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비로서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을 해소하는 것처럼 다른 어떤 도시보다 오래 3년 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한지 3년 즈음 되었을 때, 에베소의 은장색들이 일어나 바울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신전과 신상이 모독 당한다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소동 때문에 바울은 하는 수 없이 에베소를 나와 2차 전도여행 때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둘러보고, 가뭄으로 힘들어 하던 유대 지방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채포당할 것을 직감하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에베소 근처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하였습니다.
밀레도에서 눈물의 이별 이후, 바울의 직감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의 감옥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옥중에서 4편의 편지를 기록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에베소서 입니다.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빌립보 교회와 골로새 교회, 빌레몬이라는 성도에게 분명히 편지를 쓸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베소서는 그런 명확한 동기가 없이 보낸 편지입니다. 물론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보석 같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에베소 교회의 특별한 문제 때문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낸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에베소를 지나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에 오네시모와 에바브라가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전달하러 갈 때에 함께 에베소를 들러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토록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고 그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랐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20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앞서 살펴본 골로새서 말씀과 거의 비슷하지만 더 길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기록한 당시에만 해도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에바브라와 오네시모가 함께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섬겨주었고 그들을 통해 골로새 교회에 대해 듣고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의 차이가 생겼을 것입니다. 얼마나 서로를 잘 알고 있는지가 기도를 부탁하고 자기 사정을 알리는데 차이가 생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이가 기도하는 방법
골로새서와 한 가지 더 차이점은 구체적으로 더 자세히 어떻게 기도할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두번째는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기, 세번째는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기 입니다. 하나씩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는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입니다. 성령 안에서 라는 말이 막연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성부 하나님이나,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성자 하나님과는 달리 성부와 성자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그 의미와 뜻을 알게 하시고 그것 대로 우리를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을 통해 깨닫고 그 깨달은 대로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말씀인 성경 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기 입니다. 이 말은 앞에 가르쳐 주신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며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이루어 지길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은 예수님의 뜻과 반대되었습니다. 땀이 피로 변하게 될 만큼 간절하게 싸우며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르겠노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깨어서 모든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번째는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기 입니다. 기도는 나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아시고 각자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길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 기도하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특히 우리 유초등부 친구과 기도하는 사이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친구들과 직접 대화해도 좋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기도 제목을 들어도 좋습니다. 벽에 붙힌 기도제목을 보면서 기도해주셔도 좋습니다. 유초등부 친구들과 기도하는 사이가 되어서 그들이 언약의 자녀로 바르게 자라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도하는 사이가 됩시다!
지금까지 기도하는 사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기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아니고서는 어떤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결국에는 로마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풀려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온 성도의 기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사이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특별히 유초등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면서 함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