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받으실 만한 기도가 되길 / 시편 141편 1절 - 10절

시편 141편 1절 - 10절

1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받으실 만한 기도가 되길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어 드리는 행위입니다. 아뢴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도라는 것은 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말이라는 것이 쉽게 할 수도 어렵게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도 그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행위입니다. 소원이라는 것에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분명한 의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의지가 포함되어 있기에 기도는 어떤 행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고 인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기도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반드시 뒤따라옵니다. 그만큼 기도하는 일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말로만 끝나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에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가 되도록 우리 기도를 다듬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어떤 것으로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우리 스스로 고안한 방식으로 우상숭배하듯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에는 그런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동시에 이 시편을 기록한 어떤 한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기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이 기도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가 무엇인지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의 기도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14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73편의 시편을 지었고 그 중 13편은 역사적 배경이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굴곡진 인생 가운데 목숨이 달린 절박한 순간에도 시편을 지었고, 너무나 기뻐서 저절로 노래가 나올 때도 시편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지은 시편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거의 모든 유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1편은 다윗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절을 보면 그가 급박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서 굴에 숨어 있었을 때도 있었고 블레셋 왕 앞에서 목숨이 위험한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들 압살롬에 의해 목숨이 위험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정말 온갖 위기와 위험을 겪었습니다. 이정도 경험이면 왠만한 것은 두렵지도 어렵지도 않을 것 같지만 다윗은 항상 두려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결과를 다스리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31편 15절은 그런 다윗의 믿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이 괴로움과 위기가 원수들의 핍박에 의해서 시작되지만 그 끝맺음은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에게 닥친 위기를 두려워하며 항상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을 거부하고 주인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합당하고 의로운 결과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기도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 기도를 들어주시고 긴급히 응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먼저 자기가 처한 위급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보다는 자기 기도에 대해서 먼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난 뒤 첫 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주님 앞에서 분향하는 것과 같이 해달라고 간구하며, 기도하면서 손 드는 것을 저녁 제사처럼 여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의 간구는 두 개의 간구처럼 보이지만 이 두 간구는 서로 다른 간구가 아닙니다. 히브리 시는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을 반복하면서 리듬감과 운율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비슷한 의미의 문장을 반복해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기도와 손을 드는 것은 각자 다른 행동이 아니라 같은 행동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를 오란스 자세라고 부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많이 손을 들고 하지만, 공적인 기도를 할 때에도 현재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이 축도하기 위해서 손을 들고 하는 모습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다윗은 손을 들고 하는 기도가 분향과 저녁 제사 같이 되길 기도합니다.


분향은 성소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으로 아침마다 성소를 밝히는 등불을 손질할 때 마다 피우고 저녁에 등불을 켤 때마다 다시 피워드려야 했습니다. 꺼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돌보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피우는 향의 재료와 배합은 출애굽기 30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사로이 만들 수 없도록 거룩하게 구별되어 금지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향을 사사로이 사용하는 자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앞에 분향함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분하시고 즐겁게 받으시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녁 제사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 입니다. 번제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드렸고 소제로는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반죽하여 드렸습니다. 또한 전제로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기 전에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드렸습니다. 안식일과 절기 마다 드리는 제물은 달라졌지만 저녁 제사 또한 정해지고 구별된 시간에 드리는 거룩한 제사로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것으로 받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분향과 저녁 제사는 서로 다른 의식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즐겁게 받으시는 우리의 헌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이 긴급하게 여호와를 부르고 첫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기에 합당한 것이 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하나님께 해결해달라고 먼저 구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먼저 구하는 것은 자기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입술을 지키시고 악을 끊게 하소서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향기가 되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는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달라고 구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의미의 단어와 문장을 반복하면서 리듬감을 갖추고 의미를 강화시킵니다. 하지만 표현이 조금 애매합니다.


다윗은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주로 경계 구역이라는 것을 두고 주 경계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의 경우에는 성문 밖에서 침입하는 수상한 자가 있는지 경계하고,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은 성벽 밖에서 성벽을 넘거나 파괴하려는 수상한 자가 있는지 철저히 경계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입과 입술을 지켜달라고 말한 이 문장과 시구만 본다면 입 밖인지 안 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앞선 문맥을 따라 간다면 입술로 나오는 말에 주의를 해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부르면서 내 음성을 들어달라고 간구하고, 내 기도가 분향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앞선 문맥을 따르자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말들을 잘 분별하고 다듬어서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음성과 문장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간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간구와 연결해보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다윗은 자기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져서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길 간구하면서 또한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도록 간구합니다. 어떤 일을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회의 또는 가벼운 의사소통은 있어야 합니다. 또 악한 일이나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보상이 필요한 법입니다. 다윗은 입술을 지켜달라고 간구하면서 악인들과 악한 일을 하기 위한 말을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부정한 이익을 탐내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잘 다듬어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도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연약함을 인정하는 어쩌면 구질구질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다만 다윗이 기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을 도모하는 말과 악한 일을 통해 얻을 부정한 이익을 탐하지 않길 원하십니다. 차라리 의로운 자들이 그를 힘들게 하고 책망하는 것을 따라가길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향기로 받으실 만한 기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죄악을 끊고 의로움을 바라는 거룩하고 구별된 자가 되길 원하시며 그가 하는 기도가 바로 향기로운 기도가 될 것입니다.


에스겔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 고안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라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정성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어느 날 에스겔에게 한 성읍 만한 건물을 보여주시고 새롭게 만들어질 성전이니 잘 측량하라고 하셨습니다. 측량을 끝마친 후, 하나님께서는 동쪽으로부터 성전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43장 7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은 사람이 생각하는 화려함과 웅장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습니다. 맨 처음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은 7년 만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기간은 자신의 궁전을 짓는 사용한 13년 보다 더 짧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난 후, 다시 세운 스룹바벨의 경우에는 공사가 중단된 18년을 제외하면 4년 만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특히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길이와 높이가 2배나 컸는데 말입니다. 짧은 공사 기간은 성전 건축의 중점이 화려함과 웅장함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참고로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기간이 14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번이나 진행된 성전 공사 모두 짧았던 이유는 성전에 사용된 설계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설계도는 출애굽기에 기본적인 성막 설계를 따라서 다윗 왕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추가해 역대상하와 열왕기상에 기록하였습니다. 성전 건설을 주도한 솔로몬 왕과 스룹바벨은 그 설계를 따라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았습니다. 성전은 단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건물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작은 일에도 얼마나 잘 듣고 순종하였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였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말씀하신 그대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역대 이스라엘 왕들은 그 성전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자기 나름의 정성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왕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직접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왕은 성전 뜰 안에 이방 신의 제단과 목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마치 로마의 만신전 같이 싸움에서 이긴 민족의 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장식해두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왕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신들을 함께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들의 신전을 단지 벽 하나로 구분하여 성전 옆에 꾸며놓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모두 그 죽은 왕들의 시체라고 표현하시며 불쾌함을 드러내십니다. 그것들을 치우고 제거하여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예수님께서도 허례허식으로 쌓은 성전을 비판하시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절에서 2절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을 헤롯 대왕이 46년 간 증축하여 지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예수님께 보여주고자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이 무너질 것이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였기 때문입니다.


헤롯 대왕이 아름답게 지은 성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성전은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황폐하게 될 건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악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암탉이 자기 새끼를 날개 밑에 모으는 것 같이 예루살렘을 모으고 보호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가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전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튼튼하고 거대한 건물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만이 안전을 보장합니다. 시편의 시인이 고백하는 바처럼 의인에게 매를 맞고 책망 받는 일이 더 자신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말씀과 약속을 붙잡고 스스로를 다듬는 삶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내용보다 기도하는 그 사람을 더 주의깊게 보십니다. 그가 말씀에 따라 사는 의인인지 말씀을 거부하는 죄인인지를 먼저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기도할 문장과 몸가짐, 내가 생각하는 정성을 다듬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으로 자신을 다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말씀에 따라 다듬어가는 그 과정을 기쁘게 여기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는 전혀 안 들어주시겠구나 하는 걱정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행이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전치 못한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따뜻한 분이십니다. 다윗은 완벽한 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많은 실패를 했고 자기 부하의 아내를 취하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 받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말씀을 따르는 의로운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말씀을 거역하는 악인들은 벌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기도할 수 있었던 근거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주인이십니다. 다윗에게 하신 말씀과 약속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며 약속입니다. 이 말씀과 약속을 붙잡고 우리를 다듬어 가며 받으실 만한 기도가 우리를 통해 바쳐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듬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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