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산상보훈 4부 - 5부”을 읽고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을 너무나 신봉할 때가 많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살펴보면 SNS와 메스 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은 쉽게 사실이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근거도 없는 사실들이 공신력 있는 TV 채널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방영되었고 이 방송은 일반 시민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한미 FTA 반대를 외치게 되었다. 이런 유언비어들은 전 국민의 가슴을 아직도 아프게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적이고 경험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사고의 원인과 구조 방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칭 전문가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구조 방법이 있다. 선박 침몰에 대해서 정부가 숨기는 점이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해왔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 그들이 주장한 일부 사실이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들리는 말이 내 입맛에 맞다면 덜컥 믿어버리는 실수를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는 진실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이 글 “산상보훈 4부 - 5부”는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교육받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들었던 말들이 잘못된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본래의 뜻으로 돌아오도록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밝히 보이는 글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부터 48절까지 형제 사랑에 대한 율법들을 다시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몇 가지 율법과 계명들을 아주 엄격하게 해석하신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제를 노하게 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되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함이니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가혹한 기준과 형벌은 에수님의 사랑과는 반대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기 위하여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율법의 기록된 문자적인 최소한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켜질 때 나타나는 사랑과 유익들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그에 대한 심판을 직접적으로 적용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겁만을 주기 위한 엄포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벌을 받아야 하지만 형제 사랑의 원칙들을 지킨다면 다시 말하자면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한다면 이런 가혹한 벌들은 알아서 비켜나간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을 버리시기까지 온전히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자신을 부인하며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절 - 18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행에 대해서 가르치신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이 들어 맞는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의식하여 외식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랑을 행하는 것은 나중에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지 않고 눈 앞의 사람들이 알아주는 영광 만을 쫓아 달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구제함을 은밀히 해야 하고 기도하는 것을 은밀히 해야한다. 금식 또한 금식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히 보실 것을 믿고 바라보아야 한다. 기도의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은밀한 중에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해야한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강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로 오는 것으로 우리 자신을 채워달라고 우리 자신을 용납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 또한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내가 가진 것 모두가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항상 유념해야한다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그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채운다.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급으로 인한 것임을 항상 기도함으로 우리 속에 되뇌어야 한다.
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주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밝히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도 곡해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생활이란 예수님께 무릎 꿇고 겸손하게 이 말씀의 뜻을 묻는 것이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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