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9·11 테러를 통해 조명하는 미국 시민종교와 정치”를 읽고

  최근 미국 대선 결과에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 후로 줄곧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며 어떤 나라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일등 국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세계는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자국의 이익과 불이익이 극명히 나누어지고 미국을 대하는 태도 또한 변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목의 중심에 선 두 후보는 자신의 대선 행보에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내용을 항상 포함시킨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2015년 3월 2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에서 지역 교회 목사와의 사적인 대화중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발언한 것을 언론에 노출시키는가 하면, 공화당 대선후보 도날드 트럼프는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라는 기독교 매체에서 현재 트럼프 선거캠프의 복음주의 위원회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젠센 프랭클린 목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가 10여년 전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렸다.”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두 대선후보는 어쩌면 전 세계의 종교와 인종이 다 모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해서 왜 기독교적 가치를 말하고 옹호하는 것일까? “9·11 테러를 통해 조명하는 미국 시민종교와 정치”는 미국 내에 퍼져있는 기독교 같지만 기독교가 아닌 “시민종교:”를 911 테러에 대응하는 미국의 모습에서 찾고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루고 한국 교회에게 주는 시사점을 제안하는 글이다.

 “시민종교”라는 말은 18세기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처음 사용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사회는 개인화되고 다원화되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옅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시대 상황 속에서 루소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기 위해서 종교심을 근거로 하는 국가종교의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이러한 종교는 루소 이전에도 많은 형태로 나타났다. 당장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한 국가를 세우는 왕들에 대한 탄생 신화나 그들이 겪은 신기한 일들이 전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다른 문화권의 건국 신화와 지도자 탄생 신화 등을 비교 연구를 통하여 신화와 설화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루소가 대면한 상황도 계몽주의 사조 아래에서 인간의 이성이 최고의 가치이고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의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시대와 같이 신화적인 이야기들로는 인간 이성을 최고로 여기는 시민들이 따를 만한 국가종교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유럽 사회에서 그래도 일반적으로 받아드리는 기독교를 사용하여 신화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사회 통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가 종교를 만들었다. 이를 시민 종교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존재, 사후 세계 악한 자의 형벌과 의로운 자에 대한 보상과 같은 것이 시민 종교의 대표적인 교리로서 루소가 의도했던 사회통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것에 부족함이 없게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숭고한 동기는 그들로 하여금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을 애굽으로 취급하였다. 그 곳에서 자유를 억압받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이주한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복지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라 여겼다. 이 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그것을 실현하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미국의 탄생을 책임진 청교도들의 생각이었다. 영국과 독립을 위한 전쟁을 벌일 때에도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하는 투철한 사명감에 전쟁에 임했다. 그리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출애굽기 속의 모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이렇게 미국은 옛날 이스라엘 나라가 살아 내어야 했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민족과 나라라고 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 속 사사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여 살아간 타락의 시대와 종교개혁시대에 보여주었던 로마교회의 우상숭배와 잘못된 교리 등으로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자신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선택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초 소련과의 냉전을 통해서 더욱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몇 번이라도 파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었고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온 미국인과 전 세계인이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그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에 따르면 “회의를 끝내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노을이 드리운 가을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음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다 죽을 것이라는 예감에 공포에 휩싸였다.”라고 회상할 정도 이다. 또한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촉발된 우주개발 경쟁 과 한국전 이것은 양국의 순수한 과학 기술력의 경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발사체 즉, 미사일 개발에 의미를 둔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경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양국은 자국의 존망을 걸고 그 경쟁에 뛰어 들었다.
쟁과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대리전을 통해서 언제라도 2차 세계 대전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보장을 누구도하지 못했다. 그런 불안감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국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소극적인 자세보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발휘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것이기도 하다. 이 적극적인 생각은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미국 자신만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포함되 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부시 전 대통령은 ‘악의 축’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미국이 구연하고자 하는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를 지정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명분을 얻게 된다. 이렇듯 미국의 시민종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로 구성된 다원화된 현대 미국 내의 사회통합과 국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데 있어서 더욱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미국 국민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또한 사회적 의미의 복음은 시민종교가 생각하는 미국의 방법과 목표가 아니다. 시민종교는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의 자유와 평화를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시민종교는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이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해서 찬성여론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정치가들은 미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미국인들에게 호소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재선에 성공하였지만 전쟁에서는 실패했다. 911 테러의 주범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색출해내지도 못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반군과 미군들의 지리한 국지전만을 계속하였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견 기자나 전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방문한 몇몇 미국인들과 외국인들 또한 우리나라 사람까지도 납치와 공개처형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런 실패 때문에 공화당은 정권을 잃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작전이 성공한 후에 백악관 연설에서 “정의가 실현되었다.”라는 표현으로 미국의 승리를 하나님의 승리와 같이 생각했으며, 작전에 참여한 특수부대원은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하고 임무 성공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무전 내용에서 “하나님과 국가를 위하여, 작전코드 제로니모를 전송한다. 작전코드 제로니모. 적을 사살했다.”라고 미국의 승 ‘제로니모’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혹은 포획에 대한 작전코드였다. 빈 라덴 본인에게 붙여진 코드명은 ‘잭팟(Jackpot)’ 이라고 한다.
리가 하나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시민종교의 전형적인 행태을 보여준다.

 시민종교가 국가를 이끌고 나가는 것에는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 없다. 오히려 사회통합을 이루어주고, 시민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정부가 할 때에 효과적으로 정부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종교에서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빠져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유와 평화를 실현시키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가들이고 그들을 따라가고 지지하는 미국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온 인류에 대한 구원을 선포하셨지만, 시민종교에서는 미국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미국의 하나님이 되시고 미국민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민종교가 우리나라에서도 꿈틀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일부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할 강단에서 특정 후보자나 정치인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애국애족 하는 것이 공예배 설교의 주제가 된다. 그리스도인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익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선출되어야만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다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우리 사회는 광우병 사태, 천안함 사태, 세월호 사태 등을 거치며 정치권에서만 이슈가 되던 보수·진보 간 진영 갈등이 일반 대중들도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 안에 일부는 미국과 같이 시민종교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그 복음이 선포하는 정의와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성육신하여 내려오신 예수님의 겸손함과 온유하심을 우선 본받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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