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감각은 항상 다르다. 감각은 우리 몸의 상태에 따라 민감해지기도 하고 둔감해지기도 한다. 그 중에 시력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력을 우리의 감각 중에 가장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받아드리고자 하는 것만 받아드리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실험심리학적 용어로 ‘확증편향’ 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선거에 많이 나타난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잘못은 크게 보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은 잘못을 하였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든지 잘못을 변호하려고 애쓴다. 성경을 볼 때에도 동일하다.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과 신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잘 발견해내지 못한다. 특히, 성령님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적혀있는 모든 계시의 말씀을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 전통의 무속신앙적인 개념으로 성령님을 귀신과 같이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오순절 운동적인 한국 교회 전통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편향되게 이해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성경으로 계시하시는 성령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글 “성령세례와 중생의 관계” 는 성령세례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힘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성령 세례라는 말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세례라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긴다는 뜻이다. 성령을 주다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성령 세례의 의미는 그저 주는 것보다 더 많이 풍성히 주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는 구약시대에 성령님께서 오셨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구약 시대에서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는 특정 인물에게만 국한 되었다. 오순절 이 후의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로 확장된다. 성령님께서 더 많이 풍성히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서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는 구약 시대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구약 시대에서는 대표적으로 사사 시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신약 시대에서는 우리의 중생, 구원에 연관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고 믿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성령세례는 중생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다. 엄밀한 시간 순서로는 성령세례가 먼저 일어나고 중생이 그 이후에 일어나지만 그 둘의 연속성은 분리할 수 없다. 차라리 같은 의미의 다른 말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오순절의 사건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중요해진다. 제자들은 이미 중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베드로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교회의 반석이 되는 중요한 고백을 한다. 다른 제자들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음을 볼 때에 오순절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도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성령님께서 강림하신다. 거기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다. 성령님의 강림은 구약과 예수님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루어졌고,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으며, 교회를 통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루어졌다. 120명의 성도들에게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출발 신호였으며, 그 출발 신호에 따라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공급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현 시대에 우리에게는 오순절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오순절과 같은 현상은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모든 성도는 오순절과 같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더 많이 풍성히 오신 시대에 살고 있다. 영적인 사실이지만 충분히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우리가 쓰는 말로 번역된 성경을 가질 수 있으며, 성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수많은 책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읽을 수 있으며, 우리말로 된 예배를 드리고 우리말로 된 설교를 듣는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중세 시대의 성도들 보다 더 성경을 읽지 않을 때가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성경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성경을 읽고 순종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고 말씀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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