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피임" 을 읽고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 시간에는 피임 방법을 배우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교육 시간에 피임 방법을 배우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중고등학생 심지어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성교육 시간에 피임을 교육해야할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피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피임”은 도덕적·종교적 문제로 로마교회와 개신교회에서 피임에 대한 입장을 비교 설명하며, 그리스도인의 대안 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이다.

 피임은 20세기 들어서 전 세계적인 도덕적·종교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이전에는 피임하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 시행할 수 있었던 특수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화학공업의 발전으로 각종 합성수지를 이용한 피임도구가 대중화되었고, 피임이라는 기술은 지난 세기와 달리 교육기관과 에이즈 퇴치 운동 차원에서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면서 대중화를 가속시켰다. 대중화된 피임 기술은 처음 의도와는 달리 낙태와 매춘에 이용되었고, 국가와 교회는 그것을 금하는 조치를 내리거나 반대로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피임은 본격적으로 윤리적 문제로 떠올랐다.

 피임에 대한 교회의 자세는 창세기 38장의 “오난의 죄”를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로마교회는 밖으로 사정하는 행위 즉, 피임 행위를 하나님께서 죄로 보시고 오난을 죽이셨다고 생각했다. 이는 로마교회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우선시하는 교리적 바탕이 깔려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목적은 출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오난은 피임 행위를 시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지난 1,000년 동안 로마교회를 지배해 왔으나,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피임기구의 대중화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되면서 로마교회도 성관계에 있어서 출산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부부가 연합하는 것에 대한 의미 또한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산과 부부의 연합함은 동시에 이루어져야할 목적으로 생각하여 피임기구 사용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여성의 생리주기에 따라 자연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날짜만을 골라 부부관계를 가지는 ‘생리주기법’의 사용은 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신교회의 입장은 다르다. 오난의 죄는 피임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형수 다말을 돌봐야하는 하나님께서 오난에게 부과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계대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회는 “오난의 죄” 본문에서 피임에 대한 어떠한 윤리적인 규범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개신교회는 부부 관계는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로마교회와 달리 부부간의 연합됨의 즐거움만을 위해서도 부부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 근거해서 피임 기구를 사용한 부부관계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개신교회 안에서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기대어 피임을 반대한다. 그러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신 대상은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을 현재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기에는 힘든 말씀이다. 당장 신약시대인 고린도전서 7장에서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주관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인간의 동의와 순종이라는 하나님과 인간의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인간의 결정을 존중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와 교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하심을 부정하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의 범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로마교회나 개신교회에서 피임을 다루는 관점은 부부관계 내에서만 생각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한 여성이 성범죄로 인한 원하지 않은 임신한다면 부부관계 안에서만 피임을 생각하는 두 교회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위로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후 피임이 필요한 그 여성에게 로마교회는 모든 피임수단을 엄격히 금지할 것이고, 개신교회는 사전 피임수단을 용인하지만 사후 피임수단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정란과 배아에 대해서 완전한 인간과 같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여서 사후 피임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살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임신한 아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나 기업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를 출산한다 할지라도 범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피해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범죄로 인한 임신에 대해서 사후 피임을 허락한다면 사후 피임금지가 하나님의 명령으로서의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상황윤리적인 결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사후 피임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성범죄의 피해자인 여성만이 오롯이 범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범죄의 책임을 떠맡게 된다. 범죄로 생겨난 아이를 그 아버지인 범죄자의 손에서 키울 수는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인 피해자 자신의 손으로 평생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SNS의 성장으로 더더욱 커지고 있다. 피임은 더 이상 부부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성범죄와 관련해서도 토의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과 SNS의 성장은 자극적인 뉴스와 가십거리로 수익을 올리려는 인터넷 언론이나 매체에 의해서 성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동시에 극단적인 페미니즘 운동과 결합하여 ‘남성혐오’라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남성혐오(misandry)’와 그 반대인 ‘여성혐오(misogyny)’는 2010년대 들어 대한민국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혐오 사이트인 “일베”와 대표적 남성혐오 사이트인 “메갈리아”의 온라인 전쟁은 오프라인 뉴스들을 통해서도 보도될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들의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여자로 임신해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힘든지 아니면 남자로 현역 병사로 군대 가는 것이 힘든지 비교하는 것이다. 별 쓸데없는 것으로 논쟁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의 여성들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경구인 “여성은 찬 곳에 앉으면 안 된다.”는 의학적 조언조차도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전통 유교적 농경사회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라 생각한다. 여성이 여성의 고유한 특권인 아이 낳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인터넷 한 사이트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자신 스스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아이 낳기를 부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고 공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신과 피임이라는 주제는 부부관계 안에서만 논의되는 주제가 아니라 성역할과 연관되어 논의되는 주제가 되었다. 현대 사회는 여성이 임신을 해야 하는 존재인가? 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임이 상식인 사회가 지나고, 이제는 임신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회로 변하고 과정이다. 교회는 사회의 요구와 변화에 맞추어야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 삶이 무엇인가를 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하나님 나라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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