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출애굽기 16장-20장

16장

1.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목적은 무엇인가? (4절)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먹는 문제는 심각했다. 여호와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없는 광야를 떠나 먹을 것이 있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의 생각을 깨부수고자 하셨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 노예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질서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바와 같이 복을 베푸는 백성이 될 것이다.

2.모세가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원망은 누구를 향한 것이라 말하는가? (8절) 여호와께 향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고 공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애굽 사람들을 섬기는 노예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에게 불평과 불만을 토로한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이기에 자기에게 불만을 토로하느냐고 되묻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하여 구원의 영광을 보여주셨다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면서 공급의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실 것이다.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3.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라 말씀하시는 것은? (16절)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둘 것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작은 부분까지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먹을 것에 관련된 것이며 생명과 연관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당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다. 거두는 양에 상관없이 한 오멜의 무게로 신비롭게 맞추어 주셨다. 그러나 많이 가지고 간만큼 많이 먹어야 했으며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남겨두어 내일 먹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믿음을 저버리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완악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를 판단한다.

4. 일곱째 날에 만나를 거두러 간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28절-29절)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안식일을 지키는 것, 만나를 거두러 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자기 말씀을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를 구분하신다. 말에 대한 순종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다. 노동하지 않아도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는 의미이다. 노동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던 에덴동산의 질서를 다시 보여주시는 것이다. 죄를 범하기 전의 인간,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대로 살아갔던 그 시절로 잠시나마 되돌아가는 시간이다.

안식일이 제정되면서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안식은 없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개념조차 고대 중동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새로운 그리고 독특한 정체성을 생겼다. 칠 일에 마지막 날을 쉬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일은 이렇듯 실제적인 삶의 변화까지 요구하였다. 매일매일 일해야 했던 노예 생활에서 거룩하고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로 새로운 시간의 질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셨다.

17장

1.백성이 르비딤에 물이 없는 것을 보고 원망할 때에 모세가 백성에게 한 말은? (2절) 어찌하여 너희는 나와 다투느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지금 르비딤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심하였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인간 지도자인 모세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세는 자기를 향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왜 자신과 다투느냐고 되묻는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을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싸우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요구하였다. 하나님의 능력과 자유하심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 요구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뿐만 아니라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자신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참담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의 생각을 다 아셨지만,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이셔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출애굽기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과정 중에 계신다.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2.아말렉과 싸운 이스라엘 지도자의 이름은? (9절)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여호수아가 승리의 요인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 이는 모세가 팔을 들어 올려 기도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와 싸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말렉 군대와 싸우신 것이다. 모세가 산에 올라 기도 할 때에 아론과 훌이 같이 올라가 모세를 앉히고 팔을 함께 들어올렸다. 이 행위는 다른 능력을 끼치는 행위가 아니었다. 마술적인 권능을 끼치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아말렉을 저주하셨다. 약할 때에 공격한 벌이었다. 아말렉 족속은 히스기야 왕 때에 시므온 족속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대상 4:43).

18장

1.모세의 두 아들의 이름과 그 뜻은 무엇인가?(3-4절) 게르손(손님), 엘리에셀(도우심)

모세의 두 아들의 이름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미리 예고하신다. 물론 모세의 개인적인 형편 또한 알려주셨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손님으로 있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종 취급하며 부리고 학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구원하여 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심으로 구원하셨다.

모세는 이런 일들을 자신의 장인 이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드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 듯하다. 모세의 증언을 통하여 학대받는 자를 위해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이드로는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게 되었다.

2.이드로는 모세에게 재판제도를 제안하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 말하는가? (23절) 이 일(재판하는 일)을 감당하고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갈 수 있다.

이드로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항상 초자연적인 것으로 내려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신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이라는 인쇄되고 고정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하고 적절한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던 모세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드로의 경험과 지혜를 사용하셨고 모세는 이를 하나님의 뜻에 합한 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행한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대변자, 대표자로 서야 했다. 그렇기에 일일이 백성 개개인의 상황을 신경 쓰기에는 견딜 수 없는 한계를 가졌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율례와 규례를 가르쳐야 했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적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규칙을 가르쳐 개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공정한 법정 제도를 마련해야 했다. 법정적인 결정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모세가 모두 돌볼 수 없었다.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재판관들을 세워야 했고, 그 송사하는 일에 크기에 따라 적절한 기관을 세워 백성 모두가 재판에 대한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조치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19장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야곱의 집을 어떻게 인도하셨다고 말씀하시는가?(4절)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인도하였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과 율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원과 해방이 먼저 이루어 졌고 하나님께서는 값을 치러 이스라엘을 속량,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구원해 내셨다.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이 그리고 구원하심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는 19장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제사장의 역할은 율법과 은혜의 중재자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과 은혜를 그를 통하여 베풀어 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능력을 다른 백성들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역할을 이스라엘에게 부여하셨다.

2.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어떤 모습을 보이시며 강림하셨는가? (16절)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나팔 소리.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강림하셨다. 모세 앞에 나타나셨던 모습과 비슷하게 불 가운데 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들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점점 다가오신 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에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이 음성을 모든 백성이 들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셨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동시에 보이신 것은 시내산 강림 사건이 유일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표징이나 표적이 아니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 산에 계셨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직접 나타나셨다.

3.하나님께서는 왜 백성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셨는가? (24절) 그들을 칠까봐

모세는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두려운 모습 때문에 백성들이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백성들에게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시내 산에 절대 올라오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부주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우레 같은 음성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지만 부주의함을 버리지 못하고 금세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정하신 유월절과 무교절이 아니라  또 다른 여호와의 절일을 만들어 하나님을 자기의 마음대로 섬기길 바란다.

20장

1.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모은 말씀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1절) 십계명

십계명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들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한 명령이다. 이제 구원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여호와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율법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와 율례가 선포된다.

이때 명령 받은 백성은 바로 구원 받은 백성이다. 십계명과 율법은 윤리 체계가 아니다.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속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형성하는 이야기 속에 있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두 번째로 창조하신다. 첫 번째 창조가 혼돈한 세상을 질서 정연하게 만드신 것이었다면, 두 번째 창조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시고 옳은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다.

2.첫째 계명은 무엇인가? (2-3절)

하나님 외의 것은 모두 상대적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이다. 또한 이 명령은 너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하는 명령이다. 첫째 명령을 듣는 너 보다 더 귀하신 분이 하나님 이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3. 둘째 계명은 무엇인가? (4-6절)

우상숭배하지 말고 신을 만들어 내지 말라는 명령이다. 세상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질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당연한 요구를 하신다.

4. 셋째 계명은 무엇인가? (7절)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과 창조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가볍게 여기거나 부정하는 일을 초래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선포하지 않는 행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된다.

5. 넷째 계명은 무엇인가?(8-11절)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이 매일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으라는 말씀을 주신다. 외국인과 거류민도 함께 초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온 세상을 향한다.

6. 다섯째 계명은 무엇인가? (12절)

아버지, 어머니 모두를 공경하라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을 보호함으로 가정과 모든 공동체의 지속성을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나라와 공동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보호받기 위해 계약을 맺는 인간의 고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7. 여섯째 계명은 무엇인가? (13절)

살인은 인정할 수 없는 죽임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로 정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죽임을 바로 살인이라고 한다. 예외를 두시고 기준을 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정직하고 공정한 정의를 실현하기 원하셨다. 또한 더 나은 정의 체계로 이끌어 주셨다.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피 흘리는 행위는 반창조행위이다.

8. 일곱째 계명은 무엇인가? (14절)

간음이란 결혼 관계 외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간음을 금지하는 것은 순결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기본 공동체인 가정을 지키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9. 여덟째 계명은 무엇인가? (15절)

재산과 생계를 보호하는 법이다. 이 법으로 인하여 모든 재산과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자유를 보장하며, 공동체가 개인의 재산과 생계를 보호해 준다는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신뢰와 보장을 제공한다. 이것은 도둑질에 대한 형벌이 배상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결코 구금과 체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0. 아홉째 계명은 무엇인가? (16절)

문자적은 뜻은 법정에서 거짓말 하는 것을 뜻하지만 일상에서 거짓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증거의 예를 똑똑히 보았다. 바로가 바로 거짓말을 하였고 애굽은 패망하고 말았다.

11. 열째 계명은 무엇인가? (17절)

욕심내는 것, 욕망하는 것은 그것을 즐거워할 때에 그런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가치들을 상대적으로 여기라고 첫째 계명에 말씀하셨으므로 오직 하나님만 욕망하라 선언하시는 것이다. 또한 속여 빼앗지 말라는 명령 또한 포함한다. 랍비들은 탐심을 품는 일을 남의 것을 속여 뺏는 일과 연결시켰다.

12.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하신 이유는? (20절) 백성들을 시험하고 경외하게 하며 범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격하고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선 이것을 요구하셨지만 생판 남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구원하시고 끝까지 약속을 지키신 신뢰 관계 속에서 이 명령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를 나타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게 하시는 여호와를 나타내신다.

13.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신으로 나타나셨는가? (22절)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것, 다듬지 않은 것으로 제단을 쌓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충성하며 지키라는 의미에서 이다. 하나님께서 만든 모든 만물을 인정하고 그 안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제단에 층계 또한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당시 우상숭배 풍습과 구별되게 하라는 의미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가르쳐주신 방식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제사장의 어떤 구별됨이나 거룩함을 향상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오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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