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새벽기도 (야고보서 5장 12절~20절)

야고보서 5장 12-20절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 말씀의 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인내를 요구하시되 끝까지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참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일생이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하는 아주 답답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를 받으시고 참아주셔서 우리를 구원 받은 자로 세우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땅히 인내를 요구하실 만한 분이십니다.

우리를 참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시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만큼 인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아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혹이나 핍박 앞에서 넘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정도로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무지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혹과 핍박 가운데에서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었던 야고보서 말씀에서도 유혹과 핍박, 괴로움 안에 있을찌라도 인내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였습니다. 특히나 유대교를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더 힘든 일이였습니다. 유대인들 대부분 믿던 유대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교류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믿는 유대인 기독교인의 경우, 원래 있던 유대인 공동체에 속할 수도 없었고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평생 이방인들을 멀리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였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의 형제 야고보를 통해 야고보서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인내할 것을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맹세에 대한 부분입니다. 12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느 무엇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다른 아무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온 세상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모든 것을 사람의 뜻으로 마음대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생각하여 대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지키지도 못할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만한 맹세를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걸고 맹세하는 일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맹세에 건 어떤 것과 그 어떤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도 폐를 끼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를 수 없으며 잘 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고꾸라지고 실패하고 맙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불성실함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 없이 헛된 맹세와 그에 따른 실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출애굽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하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성막을 짓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네스 바네아에 이르러 정탐꾼을 보내어 자신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습니다. 열 두 지파 중에서 뛰어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아낙 자손이라하는 커다란 거인족들이 살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정탐꾼들은 메뚜기를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데 사용하였지만, 메뚜기는 강대한 제국 애굽을 쓰러뜨린 열 재앙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를 사용하셔서 거대하고 강대한 애굽을 무릎 꿇리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메뚜기 같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메뚜기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간 떠돌며 헛된 말을 한 죄를 치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렙과 여호수아 같이 하나님께서 내린 메뚜기 재앙을 기억하며 메뚜기 앞에서 애굽이 밥이 되었듯이 가나안 족속들도 우리의 밥이 될 것이라 외치고 또한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한 자들을 원하십니다.

두 번째 인내해야 할 부분은 질병에 대한 부분입니다. 13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고난 당하는 가운데 있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즐거워 하는 가운데 있으면 찬송해야 합니다. 하지만 질병을 얻는다면, 우리는 지쳐서 기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질병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기도 하지만 병이 깊어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기도를 통해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기도를 받는다고 해서 병이 무조건 낫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낫게 하실지 그대로 두실지는 장로들의 기도에 의해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는 병 중에 있어 교회에 나오지 못하더라도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교회의 직분자를 통하여 개개인의 질병도 돌보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교회의 직분자를 통해 병든 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신 바와 같이 병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 또한 들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이어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도 놓치지 않으시고 들어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동일하게 섬기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삼 년 육개월 만에 내린 비가 열매 맺지 못한 땅을 다시 열매 맺게 했듯이 하나님께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낫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는 삶이 그리스도 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인내를 이루지 못하고 끝내 미혹에 넘어간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20절 말씀과 같이 너희라고 불리는 교회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해야 합니다. 이 또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미혹된 자가 자신이 미혹되었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그가 바른 길을 찾아 돌이킬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을 의지하며 교회는 기도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삼년 육개월 동안 메말랐던 땅에 비를 내려주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사망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위해 인내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인내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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