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3일 수요일

변함없는 다스림과 신실한 순종 / 시편 89편 1 - 8절

시편 89편 1 - 8절

1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5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6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변함없는 다스림과 신실한 순종


에단의 노래


시편 89편의 저자는 에스라인 에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스라인 에단은 다윗 때에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로 임명되어 헤만과 아삽과 함께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에단은 지혜로운 자로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의 지혜를 평가하면서 에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았다고 평가합니다. 솔로몬보다는 못하지만 지혜롭기로 유명한 현인이었습니다. 


다윗에게 노래하는 자로 임명 받은 헤만과 아삽처럼 에단도 시편을 지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89편이 에단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편입니다. 오늘은 89편의 앞부분만 읽었지만 52절이나 되는 이 긴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 왕에게 왕권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다윗 왕조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다윗 왕조가 무너져 버린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로 알고 있는데, 다윗과 솔로몬 때에 활동한 에단이 이런 주제로 노래를 지은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듭니다.


시편 89편을 묵상하면서 에단이 보고 듣고 겪었던 상황들과 그 상황 가운데서도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신실하게 스스로 하신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제한하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에단의 시편이 우리의 시편이 되고,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에단의 상황 : 갈라짐과 빼앗김


에단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윗에 의해서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로 임명 받았습니다. 다윗 시대 때에 레위인은 20살에 공식적인 직무를 맡아 수행했습니다. 원래 광야에서 성막을 섬긴 레위인 제사장의 경우에는 25세에 수습을 시작하여 정식으로 30세에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성막은 좁았고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이 주도적으로 집전하는 여러 제사만 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을 돕는 인원이 있었다 하더라도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전을 세우려는 다윗에게 성막을 섬기는 인적 구성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다윗은 기존의 제사장들을 반열에 따라 나누어 효율적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하였고, 성전을 경비할 문지기들을 세웠고, 성전에서 밤낮 노래할 노래하는 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30살부터 직분을 맡기기 보다는 20살까지 나이 제한을 낮추어 좀 더 많은 레위인들이 성전을 섬기도록 조치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성직 개편 중에 에단은 노래하는 자로 임명 받았습니다. 그가 노래하는 자로 임명 받은 나이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 때에 세워질 성전을 생각하며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직무를 맡겼을 것입니다. 다윗의 예상대로 솔로몬은 왕으로 즉위하고 난 뒤 국내외 정세를 안정시킨 이후에  4년 만에 성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는 7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다윗은 직분자를 세울 때 이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에단은 20대의 나이로 노래하는 자로 임명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에단은 솔로몬 사후에도 계속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어 그가 어린 나이에 임명을 받아 계속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이야기를 정리하면 에단은 다윗의 제위 기간 말기부터 솔로몬의 제위 기간 전체,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초기 시대를 경험했던 레위인이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성전에 노래하는 자로 봉사하며, 또한 지혜로운 현인으로 추앙 받으며 살았던 에단은 찬란했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과 남과 북으로 찢겨져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난 분열왕국 시대의 초반부까지 모두 경험한 것입니다. 특히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5년 되던 해에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 예루살렘을 쳤고 솔로몬 왕이 이룬 모든 것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에단의 시선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왕위는 철저히 무너졌고 다시 그 영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


에단이 겪은 상황을 볼 때, 그는 도저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이 어질고 너그럽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받아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을 때 인자하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과 행동을 받아주시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그 판결은 단호하시며 죄에 합당한 벌인 죽음을 집행하는 일을 속히 하십니다. 의인과 악인을 명확하게 구분하시고 그들을 차별하여 사랑하십니다. 


차별하여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인자해 보이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에단은 하나님의 인자함을 영원히 노래할 찬송의 주제로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말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가 땅이 되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 분께서 우리가 이해할 만한 규칙과 언어로 자기 뜻을 알려주시고 그 알려주신 것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방 신들은 자기의 욕구와 필요로 인하여 변덕을 부립니다. 하지만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대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신의 변덕을 맞춰 줄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단이 대대에 알게 하기로 결심한 성실함 또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성실하게 일하십니다. 무한하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스스로 하신 말씀에 스스로의 존재와 활동을 경계 짓고 그 경계를 넘지 않으십니다. 말과 행동이 온전히 일치되어 성실하게 이미 우리에게 하신 변하지 않는 말씀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지만 에단의 앞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도 성실하심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깨어졌고, 솔로몬이 이룬 성과들은 모두 애굽 땅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금은 보화를 가지고 나왔고 그 예물은 하나님 앞에서 성막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전을 채웠던 보물을 모두 애굽 군대에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에단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하며 찬송을 시작합니다. 에단에게는 지금 현재 일어난 현상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다윗을 택하셨고 그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나라가 깨어지고 다윗의 자손이 아닌 왕이 세워졌고, 성전의 보물을 빼앗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단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주의 성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성취된 말씀 그리고 우리의 마땅한 반응


에단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은 옛날 출애굽 시대, 여호수아 시대가 아니라 다윗 때에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수 년간의 도망자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단지 유다 지파의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만 세워졌습니다. 나머지 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기브아에서 왕으로 삼고 적법하지 않아 보이는 다윗과 유다 지파를 대적하였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서로를 치는 전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그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혼란을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자기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지파들이 다윗에게 항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며 성실하셨습니다.


솔로몬 왕 때도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며 성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뒤를 이을 자로 솔로몬을 지정하셨고 그가 왕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을 죽였고, 후에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 세바도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또 다윗이 늙어 자기 체온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을 때, 넷째 아들 아도니아도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위험을 잠잠하게 하시고 솔로몬을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솔로몬 왕이 성전을 완공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 때에 비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모든 약속이 이루어져 유다와 이스라엘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습니다.


에단은 다윗과 솔로몬 때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에단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 뜻을 들춰내어 밝히 들려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기록하여 변개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변하지 않는 말씀은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일방적인 약속이나 선언만이 아닙니다. 항상 언약이라는 형태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상호 조약으로 주어졌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시고, 평안히 살게 하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보여주셨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과 성실함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우리가 감히 갚아드릴 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한하다는 말로도 담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약하고, 쉽게 변하며, 싫증내고, 무너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과 비교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에단은 여호와와 같은 분이 없다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구름 위에서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이 없으십니다. 신들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자들의 모임에서도 그들 보다 더욱 거룩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만한 고결하고 순결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를 언약의 상대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인자하심으로 언약을 변개하지 않으시고 약한 우리를 받아주셨고 성실하심으로 말도 안되는 그 약속들을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찬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음에도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노래하며, 내 말이 한 마디도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대로 전하겠다고 노래합니다.


예레미야의 상황 : 파기가 아니라 확증


지금까지 에단의 상황과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하는 마음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에단의 상황은 아직 최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에단보다 더 가혹한 상황 가운데 놓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상황은 에단의 상황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스스로도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시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을 예언하였고 적극적으로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바벨론 군대를 보고도 유다와 예루살렘은 항복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선지자가 고발한 죄들을 회개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철저한 파괴와 비참하고 비루한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항복하길 원했습니다. 생명을 보전하고 성전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와 예루살렘은 그것을 거부하였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가두어 두고 더 이상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멸망은 코 앞에까지 왔고 포위당한 예루살렘은 양식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두 차례나 많은 왕족과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갔지만 남은 왕과 백성들은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철저한 파괴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절망은 에단의 절망보다 깊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레미야 33장 19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은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윗의 자손과 레위의 자손에게 하신 약속을 완전히 깨어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약에 성실하지 못한 당사자들을 징계함으로 언약을 더욱 든든히 하고 언약의 확실함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지금은 비록 다윗의 집안과 레위의 집안에게 맺은 언약을 파하고 완전히 망하게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해가 낮을 주관하고 달이 밤을 주관하도록 언약하신 그 언약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다윗의 자손과 레위의 자손들은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청지기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현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2절에서 44절 말씀입니다.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주인은 반드시 자기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지기가 돌보는 집이 주인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돌아오셔서 맡기고 간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피실 것입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이 사실을 알기에 주인이 맡긴 일을 충실하게 할 것입니다. 주인은 그의 충실함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진실한 청지기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께서 나에게 맡기고 가셨으니 다시 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고 주인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태도 입니다. 두 번째는 주인의 뜻을 알고 마음대로 주인이 올 때를 예상하며 그 때까지 맡기신 일을 내팽개치는 태도입니다. 두 태도 모두 주인이 밝히 보여주신 뜻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주인의 뜻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부족한 종에게는 적은 벌을, 알고도 불순종한 악한 종에게는 많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에단과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 알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는 주인에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서길 애쓸 것입니다. 그 애씀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될 것입니다.


영원히 노래하자!


지금까지 시편 89편을 통해서 변함없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다스림, 그 언약 아래 있는 하나님 백성의 책임있는 순종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현실이 절망적이고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현상 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이면에 작용하며 움직이며 성취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으시다는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찬양의 감격은 우리가 주변 현상에 집중하도록 하지 않고 변치 않으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처럼 이 찬양의 감격을 가지고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 복을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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